[UP코리아]제1부 이것만은 고칩시다<1>외국인이 본 한국인

  • 입력 2004년 12월 31일 17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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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경제 분야에서는 많은 성과를 이뤘지만 시민의식 면에서는 아직도 선진국 수준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거짓말과 무례, 편법과 이기심이 통하는 나라라고 평가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2005년, 선진국의 길목에 서 있는 우리에게 공공질서 준수, 주인의식 고취, 관용과 타협의 정신 등 ‘기본’을 지키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본보는 ‘UP 코리아’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우리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캠페인을 올 한해 연중기획으로 다룬다. 분기별로 ‘이것만은 고칩시다’, ‘남을 배려합시다’, ‘배우며 삽시다’, ‘베풀고 도웁시다’라는 소주제로 나눠 주 1회 시리즈로 ‘글로벌 시민’이 되는 길을 함께 생각해 본다.》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매너가 없어요.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출입문을 잡아 준다든지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여성을 먼저 배려한다든지 하는 에티켓이 정말 부족해요.” (덩컨 데이비슨 씨·29·영국)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끔찍해요. 승객도 많지만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데는 정말….” (리사 조던 씨·35·여·미국)

주한 외국인들은 한국을 ‘초스피드 도시’라 일컫는다. “빨리 빨리”를 외치는 분주한 일상은 자기중심적 문화를 형성했고, 이 가운데 작은 배려와 에티켓이 실종되고 말았다는 것.

2004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옥상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 한강을 배경으로 불꽃놀이용 불꽃막대로 쓴 ‘2005’란 숫자가 희망찬 새해를 예고하는 듯하다. 셔터 10초간 개방. 박영대 기자

중국인 장짜오민(張조敏·27·여) 씨는 “명동 등 서울시내 거리가 지저분해 발을 디딜 수가 없다”며 “서울은 길거리에 침을 뱉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국 회사원들의 ‘술문화’ ‘밤문화’를 이해하기 힘들어요. 참석을 강요하고 또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해요. 업무시간 외의 저녁과 주말시간을 왜 가족과 함께 보내지 않죠?”(애덤 보네트 씨·31·캐나다)

특히 한국의 교통문제는 주한외국인들이 손꼽는 문제점 1위.

KOTRA가 최근 발표한 ‘외국사례로 본 투자환경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교통 문제(57.4%)는 외국인들이 한국 생활에서 가장 불편을 느끼는 분야다. 의료(29.1%), 주택(20.2%), 교육(17.5%)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응답자들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한국 운전자들의 매너와 빈번한 법규위반이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인 크리스 골라트 씨(30)는 한국에서 운전한 경험을 고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마치 ‘영웅담’처럼 이야기한다. 급하게 끼어들기, 급정거 같은 난폭운전 사이에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과정이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기 때문.

“운전은 잘하지만 한국에선 절대로 차를 몰지 않을 거예요. 한국 운전자들은 차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 너무나 위험하고 위협적이에요.”(패트리샤 쿠엔 씨·50·여·미국)

한국인들의 ‘겉치레 의식’을 꼬집는 외국인도 많다.

“결혼할 때 혼수문제로 다툼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어요. 살림이야 천천히 마련하면 되는데 왜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춰 놓고 시작하려 하죠. 또 결혼식도 지나치게 호화롭더군요.”(나미 모리스 씨·25·영국)

취재팀이 만난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다른 문화나 종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편견과 차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스페인인 후안 기라오 씨(38)의 경험.

“한국 친구들은 ‘아주 특별한 식당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불러서는 제 의견도 묻지 않은 채 2시간씩 차를 달려 산낙지를 파는 식당 문을 열곤 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제게 20 차례도 넘게 그 음식을 권했어요.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타인의 문화나 취향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라오 씨는 “한국인들은 대개 조급하게 행동하는 편”이라며 “그 자체가 무례하지는 않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실례를 범하는 행동이 되는 경우를 종종 겪는다”고 말했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백인과 제3세계 출신의 외국인이 경험하는 한국은 매우 다르다.

파키스탄에서 온 파살 무하마드 씨(25)는 “한국에선 피부 색깔로 차별을 많이 한다”며 “백인이 아니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인 마이클 허트 씨(30)는 “한국 사람들에게 외국인은 곧 백인이고, 동남아인들은 ‘외국인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며 “같은 외국인이지만 대접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중국적자인 로완 존슨 씨(42)는 한국에서는 반드시 캐나다 여권만 사용한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모든 백인을 북아메리카에서 왔다는 전제를 갖고 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한상진(韓相震·사회학) 교수는 “‘안’과 ‘밖’을 가르는 문화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걸림돌”이라며 “이제는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글로벌 시민사회’로 가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김호기(金皓起·사회학) 교수는 “우리 국민에게 지구촌 시대에 걸맞은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자세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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