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688년 영국 작가 존 버니언 사망

  • 입력 2004년 8월 30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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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은 뭘까?

기독교인들은 단연 영국의 소설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을 꼽는다.

풍유(諷諭)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종교소설은 전 세계 100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 간디와 링컨의 애독서는 ‘위인(偉人)’들이 가장 자주 인용하는 책이기도 하다. 덕분에 ‘천로역정’은 정신적 고행(苦行)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가난한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이었던 버니언.

그가 받은 교육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게 전부였다. 신앙을 갖게 된 것도 결혼을 해서다. 아내가 결혼지참금 대신 가져온 신앙서 ‘천국에의 길’을 접하고서였다.

그는 한때 깊은 영적 고뇌와 내면의 시험에 빠지기도 했으나 선교자로 거듭났고, 전도에 열정을 쏟았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위해 쇠사슬에 묶인 채 그들에게 다가갔고, 타오르는 불을 양심에 담아갔다.”

때는 청교도혁명의 와중이었다.

1660년 왕정이 복고되고 국교신앙이 다시 강요됐으나 그는 청교도 종파를 설교하다 체포돼 12년을 옥중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덧셈을 할 때 뺄셈을 하시고 우리가 뺄셈을 할 때 덧셈을 하신다던가. 그는 “그토록 찾아다녔던 보물을 고통의 감옥에서 찾았다!” ‘천로역정’은 그 얼음장처럼 차가운 감옥 안에서 씌어지기 시작했다.

‘천로역정’은 중국어로 옮기면서 붙여진 제목. 원제는 ‘한 순례자의 현세로부터 내세로 가는 전진’이다.

고향인 ‘멸망의 도시’를 떠난 주인공이 ‘낙담의 늪’ ‘죽음의 골짜기’ ‘의심의 성(城)’ ‘허영의 거리’를 지나 ‘하늘의 도시’에 당도하는 영적 편력을 그리고 있다.

1895년 선교사 게일이 우리말로 옮겼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소설이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록’과 함께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천로역정’은 성서로 읽는 이솝우화 같기도 하다. 슬며시 번지는 웃음 속에 신랄한 풍자가 있고 고단한 영혼을 적시는 위로와 격려가 있다.

특히나 지상(地上)의 권력을 탐하는, ‘두엄쑤시개 쇠스랑’을 가진 사내들을 이리 깨우친다.

“하늘의 왕관을 주겠다고 해도 쳐다볼 줄 모르고 땅바닥의 오물(汚物)을 내려다볼 줄밖에 모르니!”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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