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홈][현장에서]“거래 끊겼는데 시세가 어딨나…”

  • 입력 2004년 8월 25일 16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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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A씨는 최근 낭패를 당할 뻔했다.

주 고객인 아파트단지의 부녀회에서 “부녀회원 전부를 동원해 당신네 업소에는 매물을 내놓지 않도록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A씨가 다른 중개업소에 비해 아파트 값을 낮게 게재하고 있다는 것. 그는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거래한 가격대로 아파트 시세 정보를 제공했는데 부녀회측에서 더 높은 가격을 매기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A씨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가뜩이나 거래 침체로 수입이 줄었는데, 아파트 부녀회로부터 ‘왕따’를 당하면 영업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그는 결국 시세 왜곡에 동참하게 된 셈이다.

요즘 시세를 놓고 왜곡과 혼란이 많다.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왜곡하기도 하고, 중개업소나 부동산정보 제공업체별로 시세 정보를 서로 다르게 제공하기도 한다.

하긴 거래가 사실상 끊어졌으니 시세가 제대로 결정될 리 없다.

시세는 말 그대로 ‘그 때 그 때의 수요공급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시가(時價)’를 말한다.

최근 정부의 각종 규제 탓에 아파트를 사겠다는 사람(수요)이 뚝 끊어졌다.

공급도 사실상 없다. 현실적으로 팔리기 어려울 만큼 높은 값에 나온 매물은 매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팔리지 않을 게 뻔하고 이를 알고도 매물을 내놓은 사람들은 팔려는 뜻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거래 시장이 없어졌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시장이 없으면 시세도 없는 게 당연하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시행한 부동산 정책은 아파트 값을 잡은 게 아니라 시장을 없애버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는 시장 및 가격의 왜곡과 혼란으로 나타났고 애꿎은 실수요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관계자는 “엉터리 시세가 제공되고, 담합을 통한 가격왜곡이 나타나는 것은 한국 부동산 시장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곳에서는 시장의 후진성만을 탓하기도 어렵다. 정부 정책이 시장의 후진성을 부추기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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