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34>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18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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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彭城에 깃드는 어둠(1)

한왕 유방이 한중을 나와 삼진(三秦)을 노린다는 소식을 처음 패왕 항우에게 전한 것은 옹왕 장함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장함은 한왕을 그리 크게 여기지 않았다. 패왕에게 대한 아첨을 겸하여 큰소리부터 먼저 쳤다.

“한왕 유방이 몰래 산관(散關)을 넘었습니다. 잔도를 불태우고 몰래 옛길을 따라 나와 용케 산관의 장졸은 속였으나 신이 그 늙은 도적을 더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창(陳倉) 길목에서 한군을 들이쳐 반드시 그 목을 대왕께 바치겠습니다.”

진작부터 유방을 막기 위해 관중에 남겨둔 장함이 그렇게 말하자 패왕도 믿었다. 항복하여 목숨을 빌 때부터 장함은 이미 옛날의 그 장함이 아니었지만, 패왕은 아직도 희수(戱水) 가에서 주문(周文)의 대군을 하루아침에 쳐부수고, 함곡관을 나온 지 두 달도 안돼 진승(陳勝)을 죽인 그 장함만을 기억했다.

그런데 장함이 보낸 소식은 그걸로 끝이었다. 어찌된 셈인지 장함의 사자는 끊어지고, 새왕 사마흔과 적왕 동예가 소문만을 근거로 보내오는 구원 요청뿐이었다. 진창 싸움에서 한왕에게 크게 진 장함이 호치에 갇혀 있다고도 하고 폐구에 갇혀 있다고도 했다.

그쯤 되자 패왕도 관중(關中)의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대군을 일으켜 한달음에 관중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팽성의 사정이 그렇지가 못했다.

패왕이 의제(義帝)를 내몰다시피 장사(長沙) 침현(*縣)으로 옮겨 앉게 한 것은 7월의 일이었다. 인심이란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것이라, 명색 천자인 의제를 따라 도읍인 장사로 따라간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옛 초나라에 대한 애정과 향수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초나라 왕실의 적통인 의제를 그렇게 쫓아내고 초나라를 차지한 패왕에게 드러내놓고 맞서지는 못해도 마음속으로는 적지 않은 사람이 분노와 원한을 품었다. 패왕이 아부(阿父)라고 부르며 곁에 두고 섬기는 범증마저도 그 일에 대해서는 패왕과 뜻이 다름을 감추지 않았다.

의제를 멀리 구석진 곳으로 보내버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패왕은 일이 그렇게 되자 심기가 크게 상했다. 명쾌하고도 직선적인 해결을 좋아하는 패왕은 다시 마음속으로 한 결의를 굳혀갔다.

(한 하늘에 두 해가 있을 수 없듯이 초나라 땅과 백성들에게도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 이 땅과 백성을 내 것으로 하고 나아가 천하를 호령하자면 의제를 없애야 한다. 사람들의 동정이 쏠려 힘으로 커가기 전에 누군가의 손을 빌려 가만히 의제를 죽여 버리자!)

그러나 팽성 안의 공기는 항우가 처음 패왕이 되어 개선했을 때와 같지 않았다. 몇몇 옛 초나라의 구신(舊臣)들은 의제가 침현으로 옮겨간 뒤에는 건들면 터질 것처럼 격앙되어 있어 함부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럴 때 들어온 게 종잡을 수 없는 관중 소식이니, 아무리 성미가 불같은 패왕이라 해도 선뜻 관중으로 군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미처 달포도 지나기 전에 이번에는 한(韓)나라를 지키는 정창(鄭昌)으로부터 급한 파발이 들어왔다. 정창은 오(吳)의 현령으로 패왕을 따라다니며 공을 세워 장수가 되었는데, 그때는 의심스러운 한왕(韓王) 성(成)을 대신하여 한나라를 맡아 지키고 있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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