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성주/日本型불황과 분명 다르다

  • 입력 2004년 8월 15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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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투자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없고 수출도 어려운 국면이 예상되며 복병인 유가 상승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우리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서 아르헨티나형이니, 독일형이니, 일본형이니 하는 ‘침체 모델’들을 얘기하고 있다. 즉 포퓰리즘에 의해 경제가 완전히 망가져 버리거나, 강력한 노조를 의식한 분배정책의 결과 장기침체에 빠지거나, 부동산 거품 붕괴에 이은 소비 부진이 발목을 잡아 경제의 활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를 일컫는 것이다.

▼본질적 차이 무시할때 같은처방▼

그러나 경제의 거시변수에 의한 유형 구분은 오류의 위험이 있다. 유형 구분의 가치는 구분 자체보다 유형별 처방이 얼마만큼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유형별로 우리와 유사한 면도 있으나 본질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거시적 증상에 의해 해결 방안을 찾는다면 흡사 급성간염 환자에게 감기해열제를 처방하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1990년대처럼 장기불황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최근의 ‘일본형’ 논란의 근저에는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 유사한 현상과 함께 우리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 되겠는가 하는 우려가 섞여 있다.

일본의 불황이 깊고 길었던 것은 1979년 에즈라 보겔이 ‘넘버 원 저팬’에서 부추겼듯이 세계 1등을 바라볼 정도의 엄청난 경제호황의 후유증이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일본은 넘쳐나는 돈으로 미국 최고의 페블비치 골프장과 뉴욕의 록펠러 센터를 사들이며 흥청댔다. 그러나 너무 빨리 그리고 높게 성장하면 그 반대 급부로 깊은 불황의 골이 오게 마련이다.

일본이 10년의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게 된 데에는 금융 구조조정과 함께 부동산 거품이 정리된 때문이기도 하나 핵심적인 이유는 제조업의 부활에 있다. 과잉채무와 과잉고용, 과잉설비의 ‘3대 과잉’에 시달리며 중국으로 급속히 빠져나가던 일본의 제조업은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고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일본 경제가 생산과 투자, 다시 소비의 선순환 구조에 진입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본의 제조업은 고도의 기술력에 의한 고부가가치 핵심 부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핵심 부품은 전 세계 제조업의 오일과도 같다. 삼성이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캐논과 도쿄일렉트론의 고가 정밀기계가 필요하며, 디지털 장비를 만드는 데에는 교세라와 무라타의 세라믹 또는 고분자 재료가 필수적이다. 하드드라이브나 DVD 플레이어에 들어가는 극소형 모터는 나이덱을 능가할 기업이 없다. 또한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등 거의 모든 첨단제품의 핵심 부품은 100% 일본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일본이 핵심 부품들에 대해 금수조치를 취한다면 전 세계의 제조업은 올스톱 할 것이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개발 계획조차 큰 차질을 빚을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는 일본의 경우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부동산 거품의 정도도 다르고 외환위기를 거친 우리나라와 일본의 금융기관의 효율성에도 큰 차이가 있다. 또한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는 답답할 정도로 신중한 재정금융정책도 다르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제조업의 경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이다.

▼日제조업 기술력 따라잡아야▼

현재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일본과 달리 장기불황에서 탈출할 원동력을 제공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조업을 살려야 우리 경제도 살아날 수 있으며, 수출이 내수로 연결되려면 기술 기반의 중소기업이 살아나 대기업과 상호 보완적인 상승 네트워크가 작동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일본형 고부가가치 제조업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근본으로 돌아가 경제의 기초인 제조업의 기술력을 튼튼히 해야 할 때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년 또는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박성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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