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북한 10대 뉴스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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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공식매체 중 대표 격인 노동신문은 당 선전선동부의 지시 감독을 받아 제작된다. 중앙당 기관지인 만큼 이 신문에 실리는 논설은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승인 하에 나가도록 돼 있다. 개중에는 김 위원장이 직접 집필하거나 수정 서명한 것도 있는데, 이런 논설은 테두리를 보통 선(線)이 아니라 특별한 약물(約物)로 처리해 구별한다고 한다. 북한 주민이 ‘경애하는 지도자’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을 허투루 다루지 못한다는 얘기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이런 노동신문에서 나라 안팎의 소식을 전하는 자유언론의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연말이면 국내외 언론이 앞 다퉈 싣는 ‘10대 뉴스’도 노동신문은 지금까지 다뤄본 적이 없다. 대신 올해는 조선신보가 ‘평양시민이 선정한 2003년 10대 뉴스’를 보도했다. 조선신보는 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발행하는 일종의 외곽 지원 매체다. 겉으로는 객관적인 제3자인 척하지만 실상은 북한의 입장과 주장을 일방적으로 선전한다. 그런 만큼 이 신문이 보도한 10대 뉴스도 ‘북한이 평가하는 2003년’을 짐작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그 10대 뉴스를 정말로 평양주민이 선정했는지는 지극히 의심스럽지만.

▷조선신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재추대와 정권창건 55돌, 정전 50돌 등을 10대 뉴스로 꼽았다. 태평성대라면 또 모를까, 올해도 안팎으로 힘겨운 시련을 겪은 북한에서 이런 내용이 10대 뉴스라는 게 어이없다는 느낌이다. 북-미 핵 공방전과 북남교류 활성화, 대일(對日) 과거청산 촉구, 만경봉호 운항재개 투쟁 등의 항목에선 자존심을 상하지 않으면서 외부 지원을 바라는 속내가 읽혀진다. 이 밖에 꼽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인민생활공채 발행, 평양의 보수-개건(改建) 등은 우리라면 10대 뉴스 언저리에도 끼기 어려울 듯한 사안들이다.

▷조선신보와 같은 친북 매체가 10대 뉴스를 선정한 것에 대해 ‘김정일 리포트’의 저자 손광주씨는 “일종의 쇼”라고 일축했다. 실제로는 그러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바깥 세상에 선전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것이다. 8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때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이 투표하는 사진을 언론에 내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노동신문이 10대 뉴스다운 10대 뉴스를 보도할 날은 언제쯤 올까. 예를 들면 핵 완전 포기 및 국제사찰 수용, 집단 영농에서 개인 영농으로의 대대적 전환, 소(小)기업의 자유로운 활동 전면 보장 등과 같은 빅뉴스 말이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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