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렇게 바꾸자]<4>정당구조 개편

  • 입력 2003년 12월 10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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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참석자들은 선진 정당구조의 정착을 위해서는 중앙당을 슬림화하고 정책기능이 강화된 원내중심 정당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중앙당은 이념 및 사회적 갈등을 흡수, 정리, 조정하는 통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지구당에 대해서도 정치권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폐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 대신 대의민주주의의 활성화를 위해 여론수렴 및 정치참여의 창구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지구당이 지구당위원장 개인의 사조직으로 전락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구당위원장의 공직 겸임 금지 등 지구당위원장의 자격요건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중앙집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현재와 같은 중앙당-시도지부-지구당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하향식 모델에서 탈피해 지구당의 정책적 기능을 강화하고 운영방식도 당원들의 협의체 형태로 바꾸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임혁백 교수=정당개혁의 기본 방향은 분권화와 정책 정당화여야 합니다. 분권형으로 가면 중앙당보다는 시도지부와 지구당의 기능이 강화됩니다. 또 중앙당은 사무국 중심의 정당이 아니라 원내정당이 돼야 정책정당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의원의 자율성이 보장되면 법안 심의에서 국회의원이 정책을 주도하는 정당이 될 것입니다.

최근 지구당 폐지론이 나오고 있지만, 미국식 원내정당 모델이라면 모를까 우리 현실에서 지구당 폐지는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성(眞性)당원을 중심으로 당을 상향식으로 운영하면서 지구당을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다만 ‘제왕적’ 지구당위원장 문제는 지구당 운영위원장과 국회의원 또는 국회의원 후보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관련기사▼
- <1>왜 정치개혁인가
- <2>정치안정의 조건
- <3>정치자금 투명화

▽김용호 교수=원내 정당화가 되려면 국회의원이 당직을 맡아 당사로 출근할 게 아니라 국회로 출근해야 합니다. 어떻게 국회의원이 당 총재나 대표의 비서실장을 해야 합니까. 국회의원은 엄연히 독립된 하나의 국가기관입니다.

▽이재호 위원=중앙당은 국민의 정치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명료하게 응축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기능에 주력해야 합니다.

지구당 폐지론이 나오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당은 민주화 문제 등에 있어 민초(民草)의 정치의식화 및 정치사회화에 나름대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구당과 중앙당이 소위 고비용정치의 주범이라면 일부 기능을 없애거나 축소하고, 사이버지구당 또는 전체 지구당의 콜센터를 서울에 두고 통합 운영하는 등의 방식으로 비용을 줄여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기선 국장=지구당 폐지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입니다. 선관위가 파악한 바로는 입후보예정자와 관련된 조직 단체가 1200개가 넘고 현역 국회의원과 관련된 산악회만 해도 100개에 이릅니다. 지구당을 폐지할 경우 그나마 현재 양성화된 조직이 산악회니 개인연구소니 하는 형태로 오히려 더 음성화될 것입니다.

▽모종린 교수=중앙당이나 지구당의 존재와 같은 하드웨어 문제보다 그 운영에 관한 소프트웨어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국회의원이 당직을 맡는 문제 등은 강제적 규제보다는 토론과 교육을 통해 자발적인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반면 정당법은 정당의 구성요건으로 법정지구당 수와 지구당의 시도별 분산조항 등을 두고 있습니다. 지구당이 강제규정으로 돼 있어요. 이를 ‘지구당을 둘 수 있다’ 정도로만 규정해 실제 설치는 자율에 맡기는 게 좋겠습니다.

▽김용호 교수=우리나라에서는 보스가 돈과 지역기반을 갖고 리더 역할을 하니까 대중정당으로 가지 못하고 여전히 엘리트정당, 명사(名士)정당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지난해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했던 시민이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을 당원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 사람들이 들어오면 큰일 난다. 통제가 안 된다”고 말하더군요. 이래 가지고야 어떻게 ‘열린’당이 될 수 있겠습니까. 리더의 움직임을 좇아 정치엘리트들이 옮겨 다니는 행태가 굳어졌기 때문에 이런 발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현재의 조직은 5·16군사쿠데타 이후 민주공화당을 만들면서 사용한 조직 및 운영방식을 기본 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은 그 같은 조직의 효용과 수명이 다했음을 보여줬습니다.

▽유인태 수석=물론 바뀌어야 하지만 느닷없이 지구당을 폐지하겠다는 정치권 일부의 주장은 그 배경과 실효성에 있어 의문스럽습니다.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한 정치인들은 지구당이 아니면 사조직을 통해서라도 대민(對民)접촉을 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상향식 공천이 일반화될 경우 지구당 없이 공직후보를 누가 어떻게 뽑습니까.

▽임 교수=분권화 추세에 맞춰서 지구당은 기능이 오히려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당이 지역민의 이해를 모아 중앙당으로 올리는 방식이 돼야 합니다. 지구당위원장의 사당화 문제 때문에 지구당 자체를 없앤다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어요.

▽박효종 교수=현재의 정당 구조는 ‘돈 먹는 하마’의 성격도 있지만, 그보다는 의회기능을 약화시킨 주범이 아니냐는 관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 기능이 마비돼도 정당 활동은 오히려 활발해지는 현상이 발견되곤 합니다. 그래서 정당인들이 ‘국회 없이도 우리는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생각까지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의회의 활성화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중앙당은 축소돼야 합니다.

▽강경식 이사장=중앙당의 대변인 제도가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최대 요인이라고 봅니다. 대변인이 하는 말이 곧 정치가 돼버렸어요. 정책이고 뭐고 발붙일 여지가 없어지고 있는 셈이지요.

또 공화당에서 출발한 우리 정당조직은 북한의 노동당 조직과 비슷합니다. 기본적으로 통일이 되었을 때를 대비해 비슷한 조직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국가조직 이외에 정당조직이 실세(實勢)로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시절 의원입법을 몇 개 해봤습니다. 그런데 당의 정책위 심의에서 걸리는 거예요. 정책위의장의 개인적 이해와 안 맞았기 때문이죠. 국회 상임위 중심으로 여야 의원이 모여 안을 내고 입법하는 쪽이 훨씬 빠르고 현실적인데도 전문성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정당에 앉아 ‘예스(Yes)’ ‘노(No)’를 판정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임 교수=정당이 원내중심 정책정당으로 가야 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당이라는 것이 원래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모인 집단 아닙니까. 인물을 발굴해서 정권을 장악하는 기능까지 없어진다면 정당이라고 볼 수 없어요. 따라서 중앙당의 완전 해체 등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앙당의 기능을 선거후보 선출과 선거 참여로 한정하되 정책기능은 원내로 완전히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지구당 개편 각당 반응▼

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지구당의 무조건 폐지보다는 그 구조와 운영을 개편해 대의민주주의의 매개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은 데 대해 각 당은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지구당 폐지’를 추진키로 한 정당들도 보완적으로 지역사무소를 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한나라당 간사인 이경재(李敬在) 의원은 “현재의 지구당은 선거에 출마할 사람이 운영을 맡고 있는 만큼 선거를 위해 자꾸 조직을 키워 ‘돈 먹는 하마’가 될 수밖에 없다”며 “일단 지구당은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대안으로 지구당연락소와 미국식 국회의원 지역사무소를 둘 필요가 있다”며 “지구당연락소는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실무 사무요원 2명 이내로만 구성해 탈당 입당 경선관리 등을 맡고, 국회의원 지역사무소는 지역민의 의견수렴과 봉사 기능을 수행토록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강운태(姜雲太) 사무총장은 “돈이 많이 드는 현재의 지구당 대신 당원 자율로 운영되는 당원협의회를 만들고 지역선관위 내에 사무실을 두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박양수(朴洋洙) 조직총괄단장은 “제왕적 지구당위원장제를 폐지하고 퇴임 후 2년간 공직후보 출마를 못하는 지구당운영위원장을 따로 둘 필요가 있다. 지구당후원회도 후보 개인이 아닌 지구당운영위원장 소관으로 운영토록 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원내총무는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면 어떤 형태로든 지역 관리를 위한 사무소가 있어야 한다”며 “지역사무소를 둬 후원회 관리와 지역구 민의수렴 등의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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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토론참석자(가나다순)▼

▽강경식(姜慶植)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용호(金容浩)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모종린(牟鍾璘)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박효종(朴孝鍾)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양수길(楊秀吉) 전 주OECD대사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이기선(李基善) 중앙선관위 홍보국장

▽이재호(李載昊) 본보 논설위원

▽임혁백(任爀伯) 고려대 정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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