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라보엠'…오페라엔 없는 보헤미안 풍경

  • 입력 2003년 12월 5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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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르제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기존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무명 예술가들의 유쾌한 기행을 그려내 전 세계 오페라팬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독일 하노버 오페라극장이 공연한 ‘라보엠’ 2막.동아일보 자료사진
뮈르제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기존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무명 예술가들의 유쾌한 기행을 그려내 전 세계 오페라팬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독일 하노버 오페라극장이 공연한 ‘라보엠’ 2막.동아일보 자료사진
◇라보엠/앙리 뮈르제 지음 이승재 옮김/396쪽 9800원 문학세계사

‘뮤지컬 등 대중적 공연을 제외하면 20세기에 가장 자주 상연된 공연작품’(모스코 카너·음악학자)이 바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1896)이다. 그러나 오페라의 원작소설이나 작가 앙리 뮈르제(1822∼1861)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19세기 초반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귀족들의 후원이 사라진 가운데 문학청년들과 예술가 지망생들은 파리로 밀려왔다. 이들 대부분은 학생 구역이었던 센강 남안 ‘라탱’구(區)의 싼 셋집에 둥지를 틀었다.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정신적으로 자유롭고자 했던 이들은 당시 늘어나기 시작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종일 예술론과 최신 사상을 토론했다. 원제가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인 이 소설은 방종에 가까운 자유와 기행(奇行)으로 점철된 젊은 예술가들의 삶을 묘사해 당시 큰 인기를 끈 작품이었다.

오페라와 소설의 다른 점을 찾아내는 것은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소설에서 미미는 마냥 청순하지 않으며, 돈이 생기는 대로 사치를 일삼는다. 오페라에서 미미와 로돌포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촛불 끄기’ 장면도 원래 소설에서는 로돌프(오페라의 로돌포)와 이전 애인 사이의 일이었다. 또 소설에서 미미는 로돌프의 방이 아니라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병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한편 무명 예술가들의 코믹하기까지 한 일화는 소설 쪽이 오페라보다 훨씬 더 풍성하다. 화가 콜리네가 파티복이 없는 철학자 친구 쇼나르에게, 초상화를 그려 달라며 찾아온 고객의 옷을 벗게 해 빌려주고 대신 그 고객에게는 다른 옷을 입혀 붙들어놓는 장면은 오늘날의 TV 개그에 버금갈 정도다. 예술가들에 비해 배움이 짧은 것으로 묘사되는 여주인공들이 겹겹으로 꼬인 예술가들의 대화를 이해하는 방식도 사뭇 재미있다. 예를 들어 그들에게 ‘플라토닉이란, 여자를 품을 줄 모르는 병’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단순한 재미로, 또는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한 예비단계 정도로만 이 책을 대하기에는 아깝다. 19세기 초중반 파리 예술가 사회의 정신적 풍경을 엿보기에 이 책 이상 좋은 재료가 드물기 때문이다. 소설에 나오는 마르셀(오페라 속의 마르첼로)은 훗날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적 이론가로 불린 쥘 샹플뢰리와 화가 타바르 등의 모습을 합쳐놓은 것이었다. 뮈제트(오페라의 무제타)의 모델이 된 샹플뢰리의 애인 마리 루는 앙그르의 작품에 모습을 남긴 직업 모델이었다.

소설에 묘사되지는 않지만, 이들과 함께 온갖 기행을 일삼았던 문인 보들레르와 고티에, 화가 쿠르베 등은 ‘라탱’구의 가난한 예술가 그룹에서 입신해 명망 있는 예술가 반열에 올랐다. 나아가 이들이 잉태했던 센강 남안의 자유분방한 기류는 나중에 초현실주의 등 신사조를 탄생시켰다.

오페라 속 로돌포와 마르첼로의 정신적 후예인 20세기 초 ‘보엠’(보헤미안)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책으로는 단 프랑크의 ‘보엠’(박철화 옮김·이끌리오)을 추천한다. 화가 피카소, 사진작가 만레이 등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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