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54…잃어버린 계절(10)

  • 입력 2003년 10월 29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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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우…좋은 이름이로군요.” 우근은 겨우 쑥스러움에서 벗어나, 자기를 받아준 일본 산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달우가 말이죠, 밀양에 남겠답니다. 난 아들 하나하고 손자 넷에 증손이 열여덟 명 있어요, 다들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럴 수밖에요, 일본 사람은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니까…그런데, 만에 하나 달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연락을 좀 해 줄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지요.”

“아아, 뭐라 고맙단 말을 해야 할지…우근씨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요.”

“할머니 덕분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잖아요….”

“…돌잔치 때, 상 위에다 실이며 화살이며 대추, 쌀, 돈을 늘어놓고, 아기가 뭘 집는지, 그걸로 미래를 점치잖아요?”

“네, 돌잡이라고 하지요.”

“민족의상을 차려입은 우근씨가 상을 잡고 걷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아버님 어머니, 친척들이 손뼉을 치면서 흥을 돋우고…감개무량했어요, 내 손으로 받은 아이가 눈앞에서 걷고 있으니. 우근씨, 뭐 집었는지 알아요? 얘기 들었어요?”

“아니오.”

“아무 것도 안 잡고, 내 무릎에 걸려 넘어졌어요. 그리고 울었죠. 내가 안아 주었더니 내 입에 손을 쑥 집어넣고 웃었어요. 아아, 정말 신기한 일이죠, 내가 드나든 조선 사람 집이 얼마나 많은데, 돌잔치 때에도 수도 없이 불려 다녔고, 그런데 그날 일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요…우근씨 어머니가 진홍색 저고리에 주홍색 치마를 입고…어머니는 안녕하신가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은?”

“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랬군요…그럼 형님은? 달리기를 잘해서, 역전 마라톤에서 조선 대표로 뛰어 구간상을 받았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아아, 참, 역 앞 쌀가게 아가씨하고 결혼했죠. 나 그날, 말 타고 가는 형님하고, 신부의 가마가 지나가는 것 보았어요. 얼마나 성대하던지….”

“형님하고 형수는 헤어졌습니다. 형님은 행방을 알 수 없고…할머니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없어졌어요.”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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