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이젠 다시 유혹하지 않으련다'…참사랑이란

  • 입력 2003년 10월 24일 17시 37분


코멘트
한국 독서계에 ‘느림의 덕목’을 선도해 온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가 이번엔 느림의 연애학을 선보인다. 렘피카의 1932년 작 ‘아담과 이브’동아일보자료사진.
한국 독서계에 ‘느림의 덕목’을 선도해 온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가 이번엔 느림의 연애학을 선보인다. 렘피카의 1932년 작 ‘아담과 이브’동아일보자료사진.
◇이젠 다시 유혹하지 않으련다/피에르 쌍소 지음 서민원 옮김/283쪽 9000원 동문선

‘유혹’의 국어 사전적 정의는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않은 길로 이끎’이다.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 단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저자로 한국 독서계에 ‘느림의 덕목’을 선도해 온 피에르 상소에 익숙한 독자라면 책 제목에서 약간 당혹스러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왕에 나온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한가로이 걷고, 꿈꾸고, 기다리는 것을 찬미하는 ‘느림의 생활학’이라면 이 책은 ‘느림의 연애학’이다.

74세의 노 철학자가 말하는 느림의 연애란, 한 순간의 열정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구태여 유혹하지 않는 데도 마음을 끌게 하는 것, 언제나 무대의 전면을 차지하려고 안달하지 않는 것, 예의와 세심한 배려로 상대방과의 관계를 조화시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의 주제는 ‘유혹’이 아니라 남녀끼리, 인간끼리의 ‘진정한 의사소통’이다.

책은 고백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노년의 철학자가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인들을 향해 벌여온 끊임없는 ‘탐색의 경험’을 짧은 에세이처럼 만들었다.

애틋한 로맨스나 진한 성애의 경험담이 아니라, 일상의 갈피마다 만난 고등학교 동창생에서부터 직장동료, 옛 스승 등 많은 여인들과의 짧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자신이 세상과 인간을 보는 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잔잔한 문체로 소개하고 있다.

‘호기심 많은 나는 다양한 여자들을 만나면서 인간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었으면 했다. 여인들을 유혹하고 그들로부터 유혹을 당하면서 나는 도피와 받아침,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썼던 수많은 가면들을 성찰하면 무방비 상태에 있는 나와 상대방의 내면이 가장 잘 투영되었다.’

저자는 자신 역시 젊은 시절, 상대를 소유하기 위해 부단 없이 노력해 온 과정을 거치며 이제 여성을 포함한 모든 타인과 삶에 대해 정겨움과 관대함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제 누군가를 유혹하기를 포기하고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미소를 함께 나누는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놀라게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숙녀들 앞에서 빙빙 원을 그려가며 춤추는 것(유혹)보다 좀더 고상하고 확실한 일들이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 고상하고 확실한 일의 목록이란 무엇일까.

‘고독하고 절망에 잠긴 환자들을 방문하고, 사랑하는 모국어의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자 애쓰는 사람들 편에 서서 투쟁하고, 의처증 남편을 피해 도망쳐 나온 여자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맹인들이 길을 건널 때 도와주고,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고아처럼 슬픔에 잠겨 있는 아이들의 찌푸린 얼굴을 향해 밝게 웃어 주고, 불법 체류자들의 서류 준비를 도와주고 … (중략). 그리고 신(神) 혼자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들이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