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문혜진/벼랑끝 사람들 등떠미는 사회

  • 입력 2003년 7월 30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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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못 이겨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자꾸만 들려온다. 17일 인천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엄마가 세 자녀와 함께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에 놀란 가슴이 가라앉기도 전, 29일에는 또 전북 완주에서 젊은 부모가 여섯 살, 다섯 살 딸들과 함께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소식이다. ‘애들을 놓고 갈 수 없어 데리고 간다’는 유서와 함께….

▼잇단 일가 자살은 ‘사회적 타살’▼

문득 5년 전 열 살이었던 한 소년이 떠올랐다. 외환위기 직후이던 그 시절, 보험금을 타 밀린 급식비와 학원비를 내자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내밀었던 소년. ‘강모군’으로 알려진 그 소년은 지금쯤 중학생이 돼 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결식아동에 대한 지원이 없었고, 소년은 급식비가 밀려 며칠 동안 점심을 굶었다고 했다.

당시 참여연대는 ‘제2의 강군’을 막기 위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국가가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결국 강군 사건이 일어난 지 근 1년 만인 1999년 이 법은 제정됐다.

며칠 전 나는 ‘벼랑끝 사회’를 주제로 한 긴급토론회를 또다시 준비해야 했다. 토론 참여자들은 빈부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고, 사회안전망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어 요즘 잇따르는 자살은 ‘사회적 타살’과 같다는 점을 지적했다. 내 마음도 무겁기만 했다.

‘만약에’가 꼬리를 물며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천의 그 가족이 충분치는 않더라도 정부로부터 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세 자녀가 보육료와 학용품비 지원이라도 받았더라면, 막노동에 나선 아버지가 좀 더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더라면, 피부병에 시달린 아이가 제대로 치료를 받았더라면, 엄마가 맘 놓고 일할 수 있게 세 살배기 아이를 믿고 맡길 아동일시보호시설을 소개받았더라면, 어디 가서 지친 마음 하소연할 상담센터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그래도 이 엄마가 ‘죽기 싫다’는 아이들을 창밖으로 내던지고 자신도 몸을 던졌을까.

절박한 이들을 위해 이런 제도를, 사회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들이 느끼는 절박함을 가슴에 품고 일해 왔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자신이 없어진다. ‘제2의 강군’을 막자고 했으나 결국 제3의, 제4의 강군이, 어찌 보면 더 심각한 일들이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목숨을 버리기 전 충분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으나, 우리는 예방책을 미리미리 만들지 못했다. 그런 예방책을 만들도록 압박하는 시민단체의 능력이 부족했고, 정부도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내가 보건복지부 장관도 아니고, 시민단체에 어떤 권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판과 개혁의 표적은 우선은 최소한의 삶조차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국가와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함도 분명하다. 여기에 시민단체와 시민운동가의 사회적 소임이 있다.

9년 가까이 참여연대에서 일해 왔지만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참여연대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단순한 꿈이다. 비판과 감시를 하지 않아도, 목소리 높여 싸우지 않아도 맘에 쏙 들게 사회가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극빈자 외면한 成長 의미없어 ▼

물론 시민운동을 하면서 당장 큰 성과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그렇다면 한 단계 낮춰 더 이상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거나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 강요된 아이들의 죽음만이라도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도 과욕일까. 스스로를 ‘서민 대통령’이라 불렀던 우리 대통령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향해 달려가자고 외치기보다는 가난 때문에 죽음을 택한 사람들을 함께 애도하고, 우리가 이들을 외면하면 성장도 할 수 없고 성장의 의미도 없다고 고백하기를 바라는 건 어떨까.

▼약력 ▼

△1971년 생 △연세대 생물학과 졸업(1993) △1994년 9월 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출발해 9년여 동안 ‘사법감시센터’ 간사,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정책부장 등을 역임

문혜진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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