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옥스퍼드 영문학사'

  • 입력 2003년 7월 4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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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영문학사/앤드루 샌더즈 지음 정규환 옮김/978쪽 3만8000원 동인

한때 인기를 누렸던 에밀 르구이의 ‘영문학 소사’(1934)와 아이퍼 에번스 경의 ‘영문학 소사’(1940)를 대체할 새로운 영문학사가 나왔다.

앤드루 샌더스의 ‘옥스퍼드 영문학사’(2000)는 무려 732쪽(역서는 968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라는 점, 그리고 간략한 개관으로 그것도 20세기 초에서 끝난 앞 책들과는 달리, 20세기 말까지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는 본격적인 영문학사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은 ‘지구상에 해가 지지 않을 만큼’ 많은 식민지를 가졌고, 그 결과 영국문학은 좋건 싫건 세계 여러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톨릭 신앙부터 전파하고 혼혈을 실천했던 라틴계 국가들과는 달리 영국은 식민지에 우선 학교부터 세운 다음, 영어와 영문학을 필수 교양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셰익스피어나 찰스 디킨스 같은 영국작가들은 어느덧 전 세계인들의 교양의 척도가 되고 말았다.

샌더스는 이 책에서 단순히 영국의 문학사를 쓰는 대신, 영문학이 시대마다 어떻게 당대 유럽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정치 역사와 긴밀히 맞물려 있는가를 탐색함으로써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서구 문화사와 지성사를 써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신개념의 문학사가 영문학도에게는 필독 전문도서가 되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훌륭한 교양도서가 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예컨대 르네상스 문학을 알려면 종교개혁과 당대의 건축 및 미술을 알아야만 하고, 왕정복고기의 문학을 공부하려면 당시 유럽의 혁명정신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며, 또 18세기 영문학을 논하려면 서구 합리주의와 시민계급의 대두에 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영문학사’의 또 다른 특징은 이 책이 앵글로색슨 문학뿐 아니라 아일랜드 문학, 스코틀랜드 문학, 웨일스 문학을 다 포함하는 영문학사, 나아가 살만 루시디 같은 소수인종계 작가들까지도 논하는 포괄적인 영문학사라는 점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전후,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라는 마지막 장인데, 여기서 저자는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20세기 후반 영문학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논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독자들은 이 정도 방대한 책을 시종일관 정확하고 성실하게 번역한 역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올바른 번역을 위해 수많은 참고서적을 섭렵한 만큼 번역의 수준은 만족스럽다. 기존의 외래어 인명 표기를 총체적으로 부인하고, 우리말 인명 표기를 원어발음에 가깝게 만든 것 또한 이 책의 특색이다.

그래서 에드워드를 ¤워드로, 키플링을 킵링으로, 엘리엇을 엘렷으로, 랜슬럿을 란씰롯으로 오필리아를 오필려로 표기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정확한 표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김성곤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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