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김기홍/IT강국, 콘텐츠에 달렸다

  • 입력 2003년 2월 20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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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의 IT정책, 콘텐츠를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뒤에 “이번 선거는 유례없는 관권선거였다”는 우스갯소리가 시중에 나돌았다. 인터넷과 온라인의 위력을 빗대어 한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 정부 5년간 정부의 주도로 초고속 인터넷망과 같은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깔아왔는데, 노무현 당선자가 그 인터넷과 온라인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결과적으로 관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정보기술(IT) 강국(强國) 한국. 지금은 누구의 입에서도 스스럼없이 나오는 말이다. 인터넷 이용자 수의 인구비율,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보급률, PC방 증가율을 내걸지 않더라도 한국이 세계에서는 드물게 인터넷 인프라를 잘 깐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을 특별히 불러 초고속인터넷 인프라 보급에 대한 멍석(세미나)까지 깔아준 것을 보면 조금 우쭐댈 만도 하다.

▼인터넷 고속道에 구형 자동차▼

하지만 자랑은 여기까지다. 인터넷 인프라는 엄밀히 말해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그 고속도로 위에 심각한 보안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1월 25일의 인터넷 대란은 가장 구체적인 본보기다. 인터넷 대란이 마이크로소프트 SQL 서버를 공격하는 ‘슬래머 웜’ 때문에 발생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취약한 보안 의식이 감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취약한 보안 의식은 1970년대에 급히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를 수선해온 땜질 포장과 흡사하다. 보안 문제를 소홀히 할 경우 정보화 사회의 기초는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보와 지식이라는 자동차가 좀 더 잘 달릴 수 있도록 말끔히 정비해 놓은 인터넷이라는 고속도로 위를 지금 어떤 자동차가 달리고 있는가도 문제다.

먼저 개인. 매일 아침 출근하여 e메일함을 열어 보면 아주 낯선 사람이 보낸 ‘오빠 나야’ ‘나 기억해’ 같은 제목의 황당한 편지들이 기다리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애교라고 치고, 산업은 어떨까. 우리 산업의 정보화 수준은 100점 만점에 50점으로 낙제 수준이라고 정보통신부는 보고하고 있다. 보안에 문제가 있는 초고속 인터넷을 구축해 놓고선 정보화했다고 손 털고 웃고 있는 격이다. 이런 경우는 조금 가엾다. 그러니 한국의 정보고속도로 위에는 벤츠가 시속 140㎞로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형 코로나가 털털거리며 달리고 있는 셈이다.

다소 단순화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IT정책은 고속도로 위에 제대로 된 자동차가 달리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달리 말해 지금까지는 초고속 인터넷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IT에 초점을 두어왔다면 이제는 그 하드웨어적인 IT가 실어 나르는 소프트웨어적 IT, 즉 ‘콘텐츠’ 육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의 정보화건, 산업의 정보화건 그 궁극적 목적은 하드웨어적인 IT 구축을 넘어 그것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정부라고 이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전자정부를 통해 어떠한 서비스, 어떠한 편의를 국민에게 제공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OECD가 정보화 사회의 논의와 관련해 인프라인 브로드밴드(Broadband:BB)와 함께 ‘디지털적인 정보와 지식의 전달(Digital Delivery:DD)’을 강조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자리 신설보다 생각 혁신부터▼

최근 노무현 당선자는 대통령 비서실에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이라는 자리를 신설하였고 또 ‘IT를 모르면 장관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IT가 가지는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IT에 대한 관심은 단지 하드웨어적인 것에 국한하지 말고 소프트웨어적인 콘텐츠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IT를 (행정과 정치의) 혁신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공언(公言)은 허언(虛言)에 지나지 않게 된다. 제대로 된 콘텐츠를 공급하기 위해선 사고방식의 디지털적인 전환, 소위 ‘마인드의 혁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김기홍 산업연구원 디지털경제실장·객원논설위원gkim@kie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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