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야당이 盛해야 정치가 생동한다

  • 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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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춤추게 하라’는 루이스 거스너 전 IBM 회장이 지난해 말 펴낸 책의 이름이다. 이 책에는 침몰 위기의 거대 컴퓨터기업 IBM을 물려받아 다시 정상에 올려놓은 그의 위기관리 비법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병든 코끼리’를 ‘건강한 코끼리’로 바꿔놓은 치료기록이다.

코끼리 얘기부터 꺼내는 이유가 있다.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 한없이 무기력하기만 한 한나라당의 모습이 마치 ‘병든 코끼리’ 같아서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바로 코끼리 몸집 같은 거대 야당의 살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지금 몹시 허탈할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이나 언론에 보도되는 비중이 부쩍 줄어들면서 어쩌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복잡 미묘하다. 그토록 자신감 넘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모습이 안쓰럽고, 수렁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실망스럽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하루빨리 훌훌 털고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강력한 야당 없이 건전한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야당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 견제의 기능이고 또 하나는 정권담당 준비다. 지난 5년간 한나라당이 이 기능에 충실했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비판과 견제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혹 없었는지, 수권 준비는 제대로 해왔는지 의문이다. 대선은 이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심판과정이다.

문제는 아직도 한나라당이 패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 패배 직후의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도 차츰 무디어지고 있다. 개혁방법을 놓고 서로 편이 갈린 채 치고 받고 싸우는 것도 모양새가 곱지 않다. 흡사 ‘병든 코끼리’가 아픔을 견디지 못해 뒤척이는 것만 같다.

이 코끼리가 춤추게 하는 방법은 분명하다. 흥에 겹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코끼리는 물론 관람객도 조련사도 모두 신명이 난다. 또 흥겹게 춤추기 위해선 무엇보다 코끼리가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나라당은 냉혹하리만큼 철저하게 체질개선부터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낡은 행태와 습성으로는 험난한 앞날을 헤쳐나갈 수 없다. 전면적이며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고 여기에 적응할 줄 아는 세련된 일꾼들이 당을 이끌어가야 한다. 지역감정에 의존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변절을 거듭하는 등 과거에 안주하는 인사는 물러나야 한다. 국민은 야당이 국가경영 비전과 이를 위한 정책을 놓고 정부 여당과 경쟁하는 집단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선동보다는 정책, 웅변보다는 이론을 중시하는 정당이 되기를 기대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 진영은 지금 저 멀리 달려가고 있다. 오히려 속도가 너무 빨라 불안할 지경이다. 그 고삐를 잡아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것은 야당의 책무다. 그런데도 야당이 아직 집안 정리조차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한나라당은 하루빨리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야당이 성(盛)해야 정치가 생동한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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