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美프로야구]한-일 스포츠 스타 박세리-이치로의 새해맞이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5시 26분


《세계 프로스포츠는 서구 선수들의 독무대. 미국프로농구(NBA)나 메이저리그(MLB)나 프로풋볼(NFL)이나 흑백선수들만 판칠 뿐 동양인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세계 프로의 벽은 높고도 두텁다. 이들에 맞서 당당히 최고 반열에 오른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의 별 박세리와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그들이다. 계미년 새해. 이들은 또 하나의 비상(飛翔)을 꿈꾼다. 새해를 빛낼 한-일 양국의 남녀 스타를 본보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함께 취재했다.》

▼박세리 “올해 7승 목표 이루고 명예의 전당 진입할터”

‘동양인 첫 미국LPGA 명예의 전당 입성을 지켜보라.’

새해를 맞는 박세리(26·CJ·테일러메이드)의 각오는 예년과 다르다.

골퍼 최고의 명예를 거머쥐는 해를 올해로 잡았기 때문이다. 또 CJ와의 국내 최고대우(5년간 150억원) 메인스폰서 계약도 성사돼 발걸음도 가볍다.

지난해까지 2년연속 시즌 5승을 거둔 추세대로라면 미국진출 6시즌 만에 ‘Se Ri Pak’은 세계여자프로골프사에 영원히 남는 인물이 된다. 52년 역사의 미국LPGA투어 명예의 전당 멤버는 지난해까지 20명에 불과하다.

명예의 전당 입성 포인트는 27점. 18승 중 메이저우승이 4차례나 포함돼 있는 박세리는 이미 22점을 확보해 놓았다. 일반대회 1승은 1점, 메이저우승은 2점이 주어지기 때문. 나머지 5점 추가는 올 시즌 중반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투어경력 10년을 채워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있어 실제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시점은 아무리 빨라도 2007년. 그러나 올해 포인트를 채우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뉴욕타임스가 ‘한국이 수출한 최고의 상품’이라고 극찬한 박세리. 그는 미국진출 첫해인 98년 당시 여자선수로는 드물게 선보인 강력한 백스핀 아이언샷은 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 해 ‘맨발투혼’으로 일궈낸 US여자오픈 정상등극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그 소중한 우승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 의기소침했던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가.

그만큼 박세리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다. 낯 설고 물 선 이역만리에서 온갖 차별과 언어장벽, 외로움을 이겨내고 일궈낸 성공이기에 그의 롱런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박세리에게 지금 골프는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채를 휘두르고도 연습장을 떠나려면 허전하다는 박세리다. “골프는 내 직업이자 내 인생 자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것도 골프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지 못했거든요.”

박세리가 밝힌 새해 목표는 7승. 아직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고지지만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말한다.

“소렌스탐을 특별히 라이벌로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러나 내가 7승 이상을 올리면 소렌스탐의 승수는 그만큼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박세리는 “아직 내 전성기는 멀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무려 11승을 거둔 소렌스탐을 뛰어넘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들린다. 박세리보다 4년 먼저 미국LPGA투어에 뛰어든 소렌스탐이 지금 전성기를 구가하는 것을 보면 그가 이렇게 장담하는 것도 당연하다.

박세리는 이달 중순까지 ‘재충전’을 한 뒤 미국 올랜도로 돌아가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 아래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다. 새해 미국LPGA투어 개막전은 3월의 웰치스 챔피언십. 박세리는 벌써부터 배가 고프다.

안영식기자 ysahn@donga.com

박세리 이모저모
생년월일1977년 9월28일
키/혈액형1m68/ O형
종교불교
프로데뷔1996년
미국LPGA데뷔1998년
2002시즌 성적5승(톱10 17회) 상금랭킹② 172만2281달러
통산우승24승(미국LPGA 18승, 한국LPGA 6승)
통산상금⑪ 572만4762달러

▼스즈키 이치로 “당당한 수위타자 탈환 월드시리즈 제패 부푼꿈”

‘야구 천재’ ‘타격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스즈키 이치로(30).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고 있는 일본인 타자 이치로는 올해로 미국생활 3년째를 맞지만 그의 목표는 해가 바뀌어도 한결같다.

“주위로부터 수위타자란 말을 수년간 들어온지라 솔직히 진절머리가 날 때도 있었죠. 처음으로 타격왕을 놓친 작년에는 그런 점에서 홀가분한 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타이틀을 다투는 프로인 만큼 내 목표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메이저리거 2년째인 2002년 그는 타격에서 무관에 그쳤다. 일본의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부터 8년 연속 획득해온 수위타자 자리를 내준 것.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인 2001년에 1위였던 안타와 도루에서도 2위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치로는 이를 굴욕이나 시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때 그때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이상을 추구해 나가는 모습을 올해에도 보여줄 것을 약속한다. 그런 다짐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젊은 날의 기억이다.

오릭스에 입단해 1,2년째 일이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1군에 올라갔지만 성적은 아주 나빴다. 감독과 코치는 타격자세를 고쳐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이치로는 자신에게 맞는 타격 이론과 자세를 독자적으로 찾아나갔다. 드디어 3년째. 그는 처음으로 수위타자에 올랐고 이후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는 타자로 성장했다.

작년은 여름 이후 타율이 떨어졌다. 상대 투수의 집중 공략에 중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치로는 자기자신을 지키려는 자세를 결코 잃지 않았다.

“상대 투수들이 나를 공략하는 방법을 바꾼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닙니다. 2001년 시즌 중반부터 그런 경향이 많아졌죠.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스스로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변화야 있겠지만 결코 내 자신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내 야구의 목표인 때문입니다.”

적과 싸우기 앞서 자신에게 이길 필요성을 이치로는 알고 있다. 메이저리그 도전 첫해에 신인왕과 최우수선수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러나 월드시리즈에는 나가지 못했다. 2년째에는 플레이오프 출장 기회조차 없었다. 프로선수로서 당연히 울적했다고 그는 말한다.

월드시리즈 제패를 노리는 올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코치였던 밥 멜빈이 시애틀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톱타자로 이치로를 내세우겠다고 밝혔다. 팀이 이치로가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만큼 이치로는 보다 큰 중압감을 안고 정상을 향해 내닫게 된 것이다.

“중압감을 괴롭게 여긴 적은 지금껏 여러번 있었지만 선수인 이상 중압감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어요. 다만 그것이 플러스가 되느냐, 마이너스가 되느냐는 것은 자신에 달려있는 것이겠죠.” 중압감을 밑천으로 삼은 이치로의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유리 히데아키(由利英明) 아사히신문 LA지국 기자

이치로 이모저모
생년월일1973년 10월22일
키/몸무게1m76, 72㎏
프로데뷔92년(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블루웨이브)
메이저리그 데뷔2000년(시애틀 매리너스)
2002시즌 성적타율 0.321(4위) 안타 208개(2위) 도루 31개(공동 4위)
연봉 200만달러
주요경력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7년연속 타격왕(94∼2000년)

2001시즌메이저리그 타격 3관왕(타율,최다안타,도루) 및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왕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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