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채연석/˝로켓을 지켜보던 눈엔 눈물이…˝

  • 입력 2002년 12월 6일 18시 37분


지난달 28일 14시52분26초, 서해안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액체 추진제 과학로켓 KSR-Ⅲ가 발사되었다. 이날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카운트다운이 ‘0’이 되자 KSR-Ⅲ는 불을 뿜으며 서서히 발사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액체 추진제 로켓이라 그런지 하늘로 올라가는 속도가 고체 추진제를 사용했던 KSR-Ⅰ이나 KSR-Ⅱ보다 훨씬 느렸다.

▼100% 토종기술 기적같은 성공▼

발사 30초 후부터 로켓 엔진에서 만들어지는 굉음이 하늘로 울려 퍼졌다. 발사장 근처 관람석에서는 수십명이 추위도 잊은 채 상기된 표정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하늘로 치솟는 로켓을 응시했다. 구름 사이를 몇 번인가 뚫고 올라가던 로켓이 연소가 끝나며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몇 달 전부터 섬에 들어와 추위와 싸우며 발사대와 로켓 조립대를 설치하고 시험을 준비했던 60여명의 연구원과 기술자들의 눈에는 조용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액체 로켓 KSR-Ⅲ는 처녀 비행임에도 불구하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게 예정된 궤도를 따라 비행했다. 길이 14m, 직경 1m, 무게 6t에 엔진추력이 12.5t인 토종 액체 로켓 KSR-Ⅲ는 이날 고도 42㎞까지 상승하며 80㎞를 성공적으로 비행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로켓 과학기술자들이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도전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세계 액체 로켓 개발 사상 이러한 성공은 처음으로 생각된다. 개발 예산이 충분치 못해 비행용 로켓을 단 1기만 제작했고, 그 1기의 로켓을 비행시켜 계획대로 성공한 예는 동서고금을 막론해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에서 로켓기술이나 부품을 사올 수 없어 항공우주연구원 과학자들이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3000개 이상의 부품을 국내에서 100% 만든 토종 액체로켓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국산 액체 로켓이 정상적인 비행을 하는 동안 느낀 것은 우리 과학기술자들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고 지독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우리는 1377년경 최무선이 주화(走火), 즉 ‘달리는 불’이라는 이름의 로켓을 세계에서 4 번째로 만들었고 세종대왕 때 길이 5.5m에 2㎞ 정도를 날아간, 당시로는 세계 최대의 로켓인 ‘대신기전’을 만든 민족이다. 대신기전의 설계도에는 ‘이(釐)’, 즉 0.3㎜라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단위까지 사용한 기록이 있다. 이번 KSR-Ⅲ의 성공적인 개발로 우리는 그 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됐다.

1997년 12월 액체 추진제 로켓 개발사업을 시작할 무렵 우리나라는 1단형과 2단형 고체 추진제 로켓을 한두 번씩 발사한 경험과 1995년 겨우 추력 180㎏짜리 액체 추진제 로켓엔진을 10초 정도 시험한 것이 전부였다. 로켓엔진을 개발하는 중 엔진이 폭발한 일도 있었고 각종 부품의 개발 및 성능 시험에서 연구원들이 많은 고생을 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낸 것이다.

지금까지 자국의 로켓으로 위성을 발사한 나라는 모두 8개국뿐이다. 이들 나라에 이 일은 국가적인 최우선 연구개발 과제였지만 그런 총력적인 지원 아래에서도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브라질은 1980년 우주발사체 개발을 시작해 1997년 첫 인공위성 발사 시도에 실패했고, 1999년 12월의 2차 발사도 성공하지 못했다.

▼항공우주국 가는 길 큰 관심을▼

우리나라의 우주발사체 개발은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수행하는 대형연구과제의 하나일 뿐이다.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은 2005년까지 5300억원을 투자해 우주발사체와 과학기술위성 2호를 개발하고 서해안 외나로도에 미국의 케이프 케네디센터 같은 우주센터를 세우는 것까지 포함한다. 2005년에 발사될 우주발사체는 60∼70t으로 이번에 발사된 KSR-Ⅲ의 10배나 되는 규모다. 그러나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개발예산은 올해 500여억원, 내년 800여억원뿐이다. 2004년과 2005년 2년 동안 나머지 4000여억원을 한꺼번에 지원 받아야 한다. 그나마 새로운 시험시설을 설치하고, 부족한 연구동과 실험실 마련을 위해 확보된 예산은 한푼도 없다. 우리나라의 독자적 우주개발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이 일에 적절한 예산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KSR-Ⅲ를 독자적으로 개발, 성공적으로 비행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우주발사체의 독자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하게 되었음은 물론 항공우주연구원의 과학자들이 2005년의 국산 우주발사체 개발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온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국민을 기쁘게 한 큰 선물이었다. 이제는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로켓 개발에 참여해 밤낮을 잊고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과학기술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할 때이다.

채연석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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