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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18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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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계절' 맞은 유권자▼
필자는 큰 집단이건, 작은 집단이건 그 지도자는 근본적으로 교육자라야 한다고 믿는다. 지도자의 정의도, 교육자의 정의도 다같이 ‘성원들의 행동양식 또는 사고방식에 변화를 이루는 자’이기 때문이다. 게으른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하고 으르렁대던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고 모르던 새 기술을 알게 하는 것이 지도자며 교육자다. 기실 모든 유능한 지도자는 동시에 유능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교육자가 아닌 지도자는 그저 별 볼 일 없는 ‘관리자’일 뿐이다. 유능한 지도자에게서 다섯 가지의 속성을 본다. 이는 동시에 유능한 교육자의 속성이기도 하다.
우선 지도자는 꿈이 있어야 한다. 작건 크건 비전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저기로 가자’고 가리키는 ‘저기’가 그의 꿈이다. 그의 꿈은 집단 성원들에게 감동과 목적과 동기를 준다. 그의 꿈은 그의 야망이 아니라 집단의 소망이다. 따라서 그의 꿈은 언제나 도덕성을 띤다. 꿈 없는 잠이 죽음이듯이, 꿈 없는 기관은 이미 죽은 기관이다. 지도자는 그 꿈을 심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지도자는 그 꿈의 뜻을 성원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발전이 꿈이라면 이를 위해 국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기업가 근로자 은행 정부부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현실적인 뜻을 통찰한 뒤 꾸준히 재미있게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지도자는 믿음직해야 한다. 지도자는 집단의 기둥이다. 기둥이 흔들리면 성원들은 방향을 잃고 집단은 실질적으로 무너진다. 따라서 지도자에겐 거짓도 식언도 있을 수 없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철새’는 그 순간 사람들 눈에 지도자이기를 멈추고, 한갓 정상배로 전락한다. 지도자의 믿음직한 지조는 옹고집과는 다르다. 지도자도 견문에 따라 생각을 바꾸거나 타협과 절충도 한다. 그러나 자기의 중핵적인 신조마저 버려야 한다면 미련 없이 지도자 자리를 떠나야 한다.
넷째, 지도자는 도량이 있어야 한다. 체구야 크건 작건 통은 커야 한다. 반대되는 의견을 들을 줄 아는 도량이 있어야 한다. 그는 측근으로 자신의 ‘복제인간’을 선호하지 않고 다른 지방, 다른 학교,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의 ‘이종(異種) 교배’를 선호하는 도량도 가져야 한다. 패배자를 짓누르지 않고, 정적(政敵)도 ‘사랑’해야 한다. 또한 지도자에겐 결국 홀로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고고(孤高)한 결정을 감수하는 도량도 있어야 한다.
다섯째, 지도자는 개인적 배려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지도자의 1차적 책임은 물론 집단의 향방이다. 그러나 동시에 집단의 목적을 원활하게 달성하기 위해 지도자는 성원 개개인의 개별적인 문제와 고민, 희망과 포부, 취미와 관심, 장점과 단점을 살피고 대처하는 인간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집단의 사기 앙양에도 크게 관계된다.
▼권세 누릴건가 의무 다할건가▼
이 모든 지도자의 요건 밑바닥에는 지도자의 의무의식과 권세의식의 갈래가 놓여 있다. 지도자의 자리엔 으레 크건 작건 권력, 보수, 영예 등의 권세가 따르기 마련이다. 본래 그 권세는 지도자의 의무를 다하라는 한 여건임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어쩐지 우리의 전통적인 지도자 상(像)에는 의무보다 권세의식이 더 강해 보인다. ‘벼슬만 하면 능압(凌壓), 해원(解怨), 협잡(挾雜)을 일삼는 변사또형 지도자’는 많고, 의무의 막중함에 ‘전전(轉輾) 밤을 지새우는 이순신형의 지도자’는 드물다는 것이 우리가 자주 한탄하는 일일 것이다.
이 지도자의 계절에 필요한 것은, 각계각층의 지도자군을 뽑는 사람, 뽑히는 사람, 임명하는 사람, 임명받는 사람들이 제각기 지도자란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지도자 상을 깊이 성찰해 보는 일일 것이다.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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