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72…1929년 11월 24일 (23)

  • 입력 2002년 11월 13일 17시 59분


여자는 이불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찾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안 올 거지예. 뭐가? 안 올 겁니다. 뭐라꼬? 그 사람의 손이 내 손목을 살며시 잡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 사람의 씨를 잉태하여 그 사람과 더욱 단단히 맺어질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잡은 손을 놓았다. 여름이 되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러오자 그 사람은 내 몸에 손 끝 하나 대지 않았다. 나는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땀에 젖은 몸을 더듬었지만, 그 사람의 피부는 내 손을 거부했다.

싫은가예?

뭐가?

내가.

싫을 리가 있나.

좋은가예?

좋지…하지만….

하지만?

…같이 살 수는 없다.

…….

아내하고 갈라설 수는 없다.

…….

건강하고 착한 아를 낳아라.

무슨 뜻이지예?

…….

이제 다시는 안 만난다는 뜻인가예?

만나고 싶다…하지만….

못 만난다 그 말입니까? 와예? 나는 안 만나줘도 괜찮으니까 태어날 아이하고는 만나 주이소. 사내아이한테는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사내아라고 정해진 건 아니잖나.

사내아이입니다.

그게 마지막 얘기가 될 줄이야, 소름이 끼치도록 조용한 집에서, 조용함 속에서 그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대체 이 무슨 짓이람,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만날 수 없다니! 아니, 만나러 갈 수는 있다. 하지만 만나러 가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보러 오지 않는다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그 사람을 죽이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아이를 잉태한 채 강물에 뛰어드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그 사람이, 아들의 얼굴을 보러….

돌풍이 불어 삼나무가 포박된 여자처럼 몸을 뒤틀며 쏴아 쏴아 쏴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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