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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17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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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다양한 정보수단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 사실을 오래 전에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시기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 정부는 미국 대통령특사인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방북하기 직전인 지난달 미국측으로부터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정보를 통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3∼5일 평양을 방문했던 켈리 특사가 방북 직전 서울에 들렀을 때 북한 핵개발에 대한 대응 방안을 협의했다.
그렇다면 켈리 특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 핵개발에 관해 북한의 시인을 받아냈을까. 한미 양국 정부의 발표와 미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 보면 켈리 특사와 북한측간에 심각한 힘 겨루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대화가 오갔나〓켈리 특사는 3일 평양에 도착한 즉시 김계관(金桂寬) 북한 외무성 부상과 회담에 들어갔다. 켈리 특사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북한이 제네바 핵동결 합의를 위반했으며 핵무기용 농축우라늄 제조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부상은 “미국이 조작해서 덮어씌우려 한다”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켈리 특사는 4일 이틀째 회담 상대로 나온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에게 북한이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 중임을 알려주는 미 정보기관이 파악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한 자료들을 추가로 제시했다. 그러자 강 부상은 예상 외로 순순히 미국의 주장을 시인한 뒤 “우리는 더 강력한 것들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회담에 참여한 미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측은 이 발언을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다는 것.
이어 강 부상은 켈리 특사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자 “당신네 대통령은 우리를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했고 당신네 군대는 한반도에 배치돼 있다. 물론 우리는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는 것. 켈리 특사는 강 부상에게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증거가 제시됐나〓켈리 특사는 그동안 미 정보기관들이 축적해온 각종 증거를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은 첩보위성과 정찰기, 도청 등을 통해 얻은, 북한이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자료들을 제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의 한 관리는 “미 정부는 올 여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정보를 입수한 뒤 구체적인 추적에 들어갔다. 이 정보는 1990년대 말부터 프로그램이 시작됐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한 관계자는 17일 “지난달 초 미국의 정보관계자들이 극비리에 방한해 북한의 특정 지역에서 난데없이 공장이 들어서고 전기가 엄청나게 사용되는 것을 볼 때 핵 개발이 진행 중이라는 의심이 간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에 알려왔다”고 말했다.미국이 99년 5월과 2000년 5월 두 차례 현장조사를 실시한 북한 금창리지역에 대한 사찰을 통해 새로운 증거를 확보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국은 사찰을 마친 뒤 “금창리 시설은 핵관련 시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이제부터 조사단의 활동 내용에 대한 기술적인 분석이 이뤄질 것이며 그 후에 추가적인 판단과 보고가 가능할 것이다”고 말해 여전히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