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세상]정신질환은 ‘뇌의 병’

  • 입력 2002년 9월 8일 17시 21분


친구 H에게.

50대 질환자가 대낮 어린이 선교원에서 흉기를 휘둘러 어린이 11명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네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어인 일일까.

그 정신질환자는 누군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속삭이는 환청에 시달렸다고 했어. 환청은 올 초 선보인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인 천재 수학자 존 내시가 앓았던 정신분열병의 대표적인 증세지. 만약 그 50대 정신병 환자가 정신과에서 제대로 치료받았다면 아이들이 다치는 사고는 없었을 거야.

문제는 많은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는 거야.

최근 대한신경정신과개원의협의회가 일반인 3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3.6%가 정신질환 증세가 있어도 병원에 곧바로 가지 않겠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어.

정신질환을 질환이 아닌 천형(天刑)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지. 정부 기관끼리 정신과 진료자료를 주고받으며 정신과에 다닌 사람 모두를 이상하게 보는데 일반인이야 오죽하겠어.

그러나 의학적으로 정신질환은 뇌의 병일 따름이야. 이러한 사실은 자기공명영상(MRI)촬영,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각종 뇌영상술을 통해 점차 밝혀지고 있지.

다리가 아프면 정형외과에 가듯, 뇌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회복할 수 있어. 몇 년 전까지는 정신과 약을 먹으면 눈동자가 풀리고 침을 흘리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곤 했지만 요즘은 약이 참 좋아졌어. 요즘 정부가 좋은 약을 보험 항목에서 제외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왜 ‘멀쩡한 너’에게 장광설이냐고 궁금해하겠지.

지난번 술자리에서 얘기했듯 너도 정신과 진료가 필요해. 너는 누가 봐도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환자야. 매사에 안달복달하게 보이며 일에 실패하거나 지연되면 못 참지. 또 걸핏하면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낭패를 보곤 하잖아?

주위의 많은 사람이 너의 인간성을 욕하지만 너의 뛰어난 능력을 잡아매고 있는 것은 질환이야. 약을 복용하면서 여러 치료를 받으면 확실히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해.

이 말을 들으면 너는 벌컥 화를 내겠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어볼 수 없겠니?

선진국에서는 정신과 치료도 다른 치료와 마찬가지 취급을 받고 있단다.

너도 본 영화 ‘식스 센스’에서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가 아내의 약병을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침내 자신이 유령이라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약병의 상표는 ‘졸로푸트’야. 미국에서는 이런 우울증 치료제가 한국의 우루사나 훼스탈만큼이나 유명해. 그만큼 많은 사람이 각종 정신질환을 치료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질환을 치료하고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기를 빌어. 그래도 망설여지니? 병원에 함께 가줄까?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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