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경제]“포드債 대신 기아債 사라”

  • 입력 2002년 5월 20일 18시 10분


《세계의 금융자본이 미국 시장에서 한국 러시아 등 이머징마켓으로 역류하고 있다. 97, 98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신흥시장이 최근 1∼2년새 안정을 되찾으면서 세계적인 주식 및 채권 투자자들이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9.3%의 성장률을 보였던 이머징마켓지수(EMFI)는 올들어 두 자릿수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머징마켓지수란 미국, 일본, 유럽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금융자본이 세계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8일 미국의 펀드매니저들이 대부분 한국과 러시아 등 이머징마켓에 대한 투자비중을 늘리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가 주요 펀드매니저 300여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2%만이 미국에 대한 투자비중을 늘리고 나머지는 해외 비중을 늘리겠다고 답변했다. 이들이 주무르는 돈은 연간 7270억달러로 세계의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메릴린치의 투자전략가 데이비드 보워즈는 “미국만 아니면 어느 곳에든 투자하겠다는 게 요즘 기관투자가들의 경향”이라고 월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펀드매니저들이 이처럼 투자처를 미국에서 신흥시장으로 옮기려 하는 것은 미국 주식시장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데 비해 이머징마켓은 주목할만한 성장세를 계속 이어가고 있기 때문. 이머징마켓의 증시 흐름을 대변하는 이머징마켓프리인덱스(EMFI)는 올들어 12% 이상 상승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주요 기업 대부분이 속한 S&P 500지수와 나스닥은 각각 3.6%, 11% 하락했다.

특히 러시아는 지난해 주가가 82% 오른 데 이어 올들어 이달 8일까지 무려 47%가 더 올랐다. 지난해 초와 비교하면 무려 2.6배가 오른 셈.

미국의 금융자본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데는 달러화의 약세도 한 몫 하고 있다. 엔화 및 유로화 대비 달러 값은 17일 올 최저치를 또 다시 경신했다.

신흥시장의 리스크가 낮아진 것도 투자자들을 끄는 요인.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20일자)에 따르면 외환위기 당시 3.75∼11.2%포인트에 달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가산금리(미 재무부 발행 채권 기준)는 올 5월 들어 1.13∼3.17%포인트로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크 본드’로 분류되던 아시아의 일부 기업은 최근 들어 같은 업종의 미국 경쟁사보다 더 낮은 가산금리를 적용받고 있다. 98년 초 4.7%포인트를 더 얹어줘야만 했던 기아자동차는 최근 포드나 다임러크라이슬러보다 낮은 2%포인트의 가산금리로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피델리티 투자은행의 케이스 퍼거슨 아시아태평양 담당 투자분석팀장은 “아시아 국가의 리스크는 최근 몇 년 새 놀라울 정도로 낮아졌다”며 “높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리스크 부담 때문에 주저했던 미국의 투자자들이 앞으로는 신흥시장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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