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어떤 정권이 되려는가

  • 입력 2002년 4월 24일 18시 30분


정권임기 10개월을 남겨두고 지금 집권세력이 보이고 있는 모습은 정말 처절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연루 비리의혹은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껍질이 하나 둘 벗겨지고 있다. 또 게이트의 단골처럼 툭하면 청와대 인사들의 비리의혹이 터져 나오니 이쯤 되면 청와대는 더 이상 권부가 아니다. 각종 이권청탁이 들락거리던 말단 민원처리 부서의 모습이다. 아태재단 또한 그동안 불거진 의혹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와 아태재단은 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공사(公私)조직이란 점에서 이곳 문제는 세 아들과 함께 김 대통령에게 귀착된다. 지금 대통령 권위가 흔들리고 이미지가 바래고 있다. 대통령의 건강 역시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난관을 순리로 풀려는 것이 아니라 애써 피하고, 버틸 때까지 버티고, 한술 더 떠 반격전을 벌여서 어떡해서든 만회해보려는 자세다. 그러나 정권비리를 왜, 어떻게 만회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안간힘은 공감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되레 민심을 악화시키는데도 그걸 모르고 있으니 처절하게 보일 뿐이라는 말이다. 참으로 안쓰럽다.

▼죄와 벌▼

쉽게 말해서 ‘내가 잘못한 일이 무엇이냐’ ‘우리만 잘못했나, 저들도 잘못했으니 피장파장 아닌가’라는 대응만 되풀이하니 과연 정권담당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에게 밝힐 것은 밝히지 않고 야당 상대로 정쟁이나 벌이겠다는 자세니 시쳇말로 ‘국민을 뭐로 보느냐’는 울분이 왜 터지지 않겠는가. 요즈음 부쩍 잘 꺼내는 말이 있다. ‘경제회복과 월드컵 등 막중한 국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인데 도대체 민심을 표류시키고 국정을 흔든 장본인이 누구란 말인가. 권력 주변에서 벌어진 갖가지 부패 때문이 아닌가.

집권세력이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역산(逆算)하고, 역공(逆功)하고, 역류(逆流)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어떡해서든 대통령 세 아들의 연루의혹이 번지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아직까지 대통령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을 밑의 사람들이 어떻게 풀이하겠는가. 권력 내부 속성상 ‘가능하면 축소지향적’의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수사를 벌이긴 하지만 속으론 찜찜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이제 김 대통령은 ‘법대로 처리’ 한마디는 해야 한다. 지금 돌아가는 판을 못 읽을 대통령이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 세 아들의 비리연루의혹을 포함해 각종 권력비리에 대한 민심의 분노를 손쉽게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더 큰 문제는 정권비리가 이제부터 터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집권세력의 안간힘은 또한 ‘대통령 감싸기’다. 지난번 청와대 개편은 진념씨 경기지사 출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 포석에서 비롯됐다는 풀이가 유력하다. 역대정권의 임기말 과제로 퇴임 후 대통령과 가족의 신변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구린 구석이 많은 정권일수록 그런 장치를 마련한다고 머리를 썼지만 성공한 정권은 없었다. 그런데도 현정권은 그 길을 가고 있다. 그 구체적 움직임이 정계개편과 이어지는 정권 재창출이다. 말이 정권 재창출이지 민주당 간판을 바꿔 달더라도 재집권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래야만 대통령과 가족의 신변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문제가 커진다’는 말을 남기고 007영화처럼 4개국을 돌아 미국으로 잠입한 최규선 게이트 연루자 최성규 전 총경의 도주는 치밀한 역산작업을 거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작품이다. 최 전 총경은 ‘최규선 밀항권유설’의 열쇠까지 갖고 사라졌다. 더욱이 밀항설이 불거지던 날 민주당이 뒤질세라 꺼낸 ‘이회창 전 총재 거액수수설’은 실로 기막힌 역공이다.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인가.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뜻대로 안 되는 것 같다. 머지 않아 진실 여부와 함께 역공의 뿌리도 드러날 것이다.

▼민심 역류할 수 있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곳곳에서 나타난 기막힌 전환점을 포함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선정국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집권세력 뒤에는 ‘보이지 않는 조직’이 작동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각각 별개 사안 같으면서도 큰 그림에서 볼 때 조직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모양이 심상치 않다. 얼마 전부터 이런저런 전문이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중립이니 정치 불개입이란 말을 믿지 못한다.

역산도 역공도 할 수 있다지만 인위적이라는 것은 위험하다. 민심을 따르지 않고 역류해보자는 욕심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고비를 맞았을 때 얼마나 냉엄하게 판단하고, 진실되게 처리했는지의 기록이다. 자기를 극복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역사의 평가도 달라진다.

최규철 논설실장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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