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노벨문학상 나이폴 강연 "작가여, 넓은세상에 눈떠라"

  • 입력 2001년 12월 17일 18시 02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V. S. 나이폴(69·사진)이 10일 시상식에 앞서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수상 기념 강연을 했다.40여분에 걸친 이날 강연에서 그는 트리니나드 섬에서 보냈던 ‘암흑’ 같았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해 자신의 문학세계를 자세히 설명했다. 나이폴 문학을 전공해온 박종성 교수가 이번 강연 중에서 우리 문단이 귀기울여 들을만한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지난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V. S. 나이폴(69)의 수상 기념 연설이 있었다. ‘두 세계(Two World)’라는 제목의 강연 내용은 우리 문단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간 나이폴은 세계적 명성에 걸맞지 않게 평소 “작가는 작품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는 믿음으로 미디어의 유혹을 뿌리치고 한적한 시골에서 살아왔다. ‘나침반도 후원자도 없는 항해자’로 불리는 그는 강연 첫머리에서 이 점을 다시 강조했다.

“거의 50년 동안 단어와 감정과 생각을 다루어왔던 내가 몇 번의 강연도 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 관해 가치 있는 모든 것은 내 작품 속에 담겨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트리니다드 섬에서 보낸 유년시절에서 시작된 문학 여정이 ‘직관’에 의해 인도되었음을 담담하게 회고했다. 이야기의 핵심은 “매번 나의 목적은 글을 쓰고, 읽기 쉽고 흥미로운 것을 창조해내기 위해” 특정 종교와 인종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자신의 방식에 따라 글을 썼다는 것이었다.

요즘 우리 문학이 고사 직전이라는 우려가 높지만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문학의 길은 어렵고 험하다. 나이폴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의 성공비결이 ‘재능’이라기보다는 ‘고된 노동’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의 말처럼 “글쓰기란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고된 정신노동의 산물”인 것이다.

또한 그는 작가가 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내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앞날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단지 책을 쓰고 싶었을 뿐이었다. (…) 프랑스인 혹은 영국인에게는 글을 쓰고자 하면 자신을 인도해주는 많은 모델 작가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박탈감은 나이폴에게 도리어 독창적인 작가의 길을 모색하게 해준 자양분이 되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인도와 중국, 이슬람 세계 등을 떠도는 이방인의 길을 택했던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여행은 소재의 고갈과 시야의 편협성이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주는 마력이었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이런 자세는 “특정 종파, 인종, 종교, 문명을 편드는 일 없이 직관에 이끌려 순수한 감정을 기록”하게 만듦으로써 그를 “선진제국의 식민주의자가 제3세계에 입힌 상처를 고발해온 역사의 증언자”(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이유)로 우뚝 서게 만든 것이다.

다양한 세상을 보면서 새로운 소재가 생겨났고 국제적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는 나이폴의 전언은 좁은 이 땅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작가들이 특히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나는 직관에 의해서만 움직여왔다. 나는 문학적 정치적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나를 이끄는 정치적 견해도 갖고 있지 않다”는 나이폴의 당당한 목소리는 매너리즘에 빠진 우리 문단을 향해 내리치는 죽비소리처럼 들린다.

수상 연설 전문은 www.nobel.se/literature/laureates에서 볼 수 있다.

박종성(충남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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