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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8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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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엔 한 사람의 삶의 족적, 욕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얼굴을 표현한 작품엔 우리 시대의 욕망과 좌절이 담겨 있는 셈. 지금의 미술은 과연 우리의 얼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미술 속의 우리 얼굴을 엿볼 수 있는 작가 3인의 작품이 각각 전시되고 있다. 조각가 박옥순의 개인전(11월5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썬&문, 02-722-4140)에 전시 중인 돌조각 얼굴상 ‘보이지 않는 것 보기’, 서양화가 정미연의 개인전 ‘생의 표정들’(11월6일까지 대구 남산2동 아문아트센터, 053-255-1793)에 전시 중인 ‘생의 표정’ 연작 그림, 금속조각가 김병철의 개인전(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성보갤러리, 02-730-8478)에 출품된 구리조각 얼굴상 ‘비장한 얼굴’ 등.
이들 3인의 얼굴 작품은 서로 다른 듯하나 공통점을 보여준다. 그 하나는 우선 강렬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 모두들 무언가 하고 싶은 말, 그러나 할 수 없는 말을 머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꿈틀거리는 욕망이되, 억압된 욕망이기도 하다. 또다른 공통점은 그 억눌림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려 한다는 점이다.
박옥순의 ‘보이지 않는 것 보기’는 보는 이를 섬뜩한 분위기로 몰아 넣는다. 얼굴은 길쭉하고 입술은 두툼하고 튀어나와 있으며, 오른쪽 눈에는 새 한 마리가 꽂혀 있다. 기괴하면서 한편으론 우울하고 처연하다.
왜 이런 얼굴이 나왔을까.
작가는 “행복과 욕망을 추구하나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일그러진 얼굴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튀어나온 입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분출을, 오른쪽 눈의 새는 희망을 상징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괴기스러운 이미지를 풍기는 것은 욕망이나 희망의 좌절 때문이다. 결국, 박옥순의 얼굴은 우리 시대 우리의 삶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미연의 ‘생의 표정’ 연작은 아예 아프리카 여인의 얼굴이다. 파스텔과 아크릴을 섞어 그린 이 작품 속에선 아프리카 여인의 무표정 뒤에 숨겨진 우울함과 비애가 읽혀진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보여지는 아프리카 여인의 원초적 건강미는 우울한 현실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 의식의 발로다.
김병철의 ‘비장한 얼굴’은 이국적이고 독특하다는 점에서 앞의 두 작품과 비슷하나 그에 비해 훨씬 더 역동적이고 희망적이다. 좌절을 딛고 희망을 찾아가려는 ‘비장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특히, 크게 뜬 두 눈과 약간 벌어진 입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 표정은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욕망이 뒤틀리고 굴절되는 현실이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일어나 말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