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 왜곡하는 정치논리

  • 입력 2001년 4월 30일 18시 47분


정부가 책정한 예산보다 세금이 더 걷혀 세계(歲計)잉여금이 생기면 선거와 권력유지를 위해 유리한 방향으로 쓰고 싶은 것이 정치 권력의 속성이다. 세계잉여금을 국채 또는 차입금이나 국가배상금 등 빚을 갚는 데 우선 사용하도록 한 예산회계법은 이러한 정치권력의 유혹을 억제하려는 뜻이 담긴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정부와 협의중인 재정건전화 법안은 세계잉여금을 국가채무 상환에 앞서 추가경정예산 재원으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명칭과 달리 재정의 불건전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세계잉여금으로는 국가부채를 먼저 갚고 그래도 남은 세금이 있다면 국회 동의를 받아 추가경정예산으로 쓰는 것이 나라살림의 정도이다.

작년 전체 예산의 8%인 7조5000억원 가량이 공적자금과 국채의 이자 갚는 데 쓰여 재정이 결코 건전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다. 104조원이 투입된 공적자금의 미회수분도 결국에는 국가 채무로 남을 수밖에 없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급증하는 국가채무를 초기단계에서 감축하는 과제는 또 다른 경제위기에 대비하고 후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다른 어떤 정책보다 우선돼야 한다.

세계잉여금을 5월 말경부터 대통령의 재가만 받으면 앞당겨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독소조항이다. 세계잉여금은 매년 10월경 국회의 결산심의 때나 그 규모가 확정된다. 행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세계잉여금을 마음대로 쓰는 것은 국회의 예산 결산 심사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이다.

올해는 모처럼 선거 일정이 잡혀져 있지 않은 해이다. 정부 여당으로서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구조조정과 재정 건전화에 진력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셈이다. 정부 여당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세출 규모를 늘리는 데만 집착하는 태도를 보여 유감이다.

선심성 세출을 늘린다고 해서 여당 표가 쏟아지던 시대는 지났다. 그것은 유권자들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보는 것이다. 민주당이 민심 이반 징후에 초조한 나머지 연기금 증시 투입확대를 통한 무리한 주가 부양이나 선심성 세출 늘리기에 팔을 걷어붙이는 것 같다. 그러나 정치논리에 의해 왜곡된 경제정책은 여당이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도 어렵고 중장기적으로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안 된다.

집권 여당은 선거가 없는 해에 경제논리를 최대한 존중함으로써 경제부처로 밀려가는 정치 파도를 스스로 막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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