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50대 트로이카’에게

  • 입력 2001년 4월 2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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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카(troika)는 원래 세 필의 말이 끄는 러시아의 수레나 마차를 뜻하는 단어다. 세 마리의 말은 한 곳을 향해 뛰는 공동운명체다. 요즘 민주당의 이인제(李仁濟·53)최고위원, 김근태(金槿泰·54)최고위원, 노무현(盧武鉉·55)상임고문을 ‘50대 트로이카’라고 한다. 이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뛰고 있는, 같은 50대의 3인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부를 만하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운명’은 트로이카일 수 없다. 셋 모두 패자가 될 수는 있어도 세 사람이 함께 승자가 될 수는 없으니까. 더구나 이들 3인만이 주자란 보장은 없다. ‘새로운 카드’가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이인제최고위원의 최고 자산은 지난 대선에서 500만표를 얻으며 확보한 대중성이다. 그는 ‘대중성의 힘’이 자신을 여권의 차기 대권후보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다. 그는 ‘70∼80년대의 상징성’이 승부수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김근태 노무현씨의 ‘민주화 이력’에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는 ‘김근태―노무현 연대론’에 대해서도 시뜻해 한다. 각자 뛰다가 여론에서 밀리면 그만이지 미리부터 손을 잡자니, 양보하겠다느니 하는 얘기가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끝까지 선두를 장담하기란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대권후보가 되려면 민주당 대의원의 표를 얻어야 하는데 정치적 뿌리가 YS계인 그로서는 민주당내 세력이 미약하다. 동교동계 구주류쪽에서 밀어준다지만 어째 갈수록 확실치 않은 기색이다. 당 밖 사정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지난해 총선에서 그가 ‘지는 해’ 발언을 한 이래 공동 여당의 ‘킹메이커’라는 JP는 좀처럼 곁을 주지 않고 있고, YS는 ‘의리없는 인물’이라며 노골적으로 타박하고 나섰다. 97년 여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경선 불복 꼬리표’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이인제씨는 자신의 ‘시장 경쟁력’이 모든 악재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결국 본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를 꺾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여권후보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대중의 지지도 이상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근태최고위원은 이인제씨의 ‘정치적 센스와 현실 정치 능력’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3김 이후의 중심적 가치가 여전히 민주주의라고 할 때 민주주의에 헌신한 일관성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와 관련된 정체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진정한 고민 없이는 새로운 정치의 비전을 일궈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 점에서 노무현고문을 인정하고, 노고문도 같은 말을 한다. ‘김근태―노무현 연대설’의 근거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도 일치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지도력’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인제씨가 개혁은 기술이라며 ‘과학적 국가경영’을 새 리더십의 첫째 항목으로 꼽는 것과는 상당한 인식 차이다. 김, 노씨는 그들의 연대설에 대해 “정치적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끼리 힘을 모아가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인제씨가 불쾌해 할 일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노무현상임고문은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김근태씨에 비하면 감성적이고 직설적인 편이다. 그의 그런 면은 때로 ‘튀는 발언’으로 불거져 ‘불안정성의 이미지’를 낳기도 한다.

노씨는 그러나 여야(與野)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좇아 97년 대선 직전에 영남 출신으로서 ‘DJ 국민회의’에 입당한 것이나, 그 후 잇따라 고배를 마시면서도 지역주의에 맞서 부산 지역 출마를 고집해 온 것 등 일관된 정치적 신념에 따라 ‘불확실한 도전’을 해 왔다고 자부한다. 그는 동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인물로 자신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인제씨와는 다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50대 트로이카’의 경쟁은 이제 출발선이다. 눈앞의 인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 지역주의와 1인 보스 정치에 함몰된 구태 정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으로 국민에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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