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현진/은행돈은 현대돈?

  • 입력 2001년 4월 4일 18시 32분


현대 살리기와 관련해 최근 은행권에서 빚어지고 있는 갈등을 보면 ‘과연 금융거래의 기본원칙이 지켜지는지’ 의심스럽다.

3월11일 10개 채권금융기관이 현대석유화학에 대해 1150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하기로 채권금융기관 협의회에서 약속했다.

그런데 한달 가까이 지나도록 유독 하나은행만이 약속한 119억원을 지원하지 않았다. 결국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2일 당장 지원하지 않을 경우 최고 50%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언뜻 보면 하나은행이 얌체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속내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자.

하나은행은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현대석유화학이 기존에 연체한 이자 8억원을 갚으면 기존 여신을 만기연장한 뒤 신규대출을 검토하겠다는 것. 연체이자를 갚아야 신규대출이 나가는 것은 금융의 기본이며 은행내규로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석유화학은 “무슨 소리냐. 다른 9개은행은 신규대출을 먼저 해줘서 그 돈으로 연체이자를 갚았다”며 맞섰다.

현대석유화학 관계자는 3일 심지어 “온 나라가 ‘현대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비상상황에서 내규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말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현대석유화학은 부랴부랴 연체이자 8억원을 마련해 6일중 하나은행에 갚기로 했다. 내주 중 신규자금 대출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갈등은 봉합됐지만 씁쓸한 뒷맛은 여전히 남는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말했다.

“우리는 개인대금업자가 아니라 은행이다. 대출을 집행하는데는 내규가 있고 주주들을 고려해야 한다. 현대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것도 따지지 않고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말이냐?”

박현진<금융부>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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