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문인들 새둥지로 뜬다

입력 2001-03-25 18:59수정 2009-09-2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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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6번 국도를 타고 한 시간 가량 동쪽으로 달리면 팔당대교를 지나 경기도 양평군에 닿는다. 이 고장 중앙에는 용문산(1157m)을 중심으로 고봉이 이어지고 그 품에 북한강과 남한강을 끼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산(山)과 수(水)를 겸비한 이 곳에 문인들이 소리소문 없이 모여들고 있다. 90년대 초반 이곳에 ‘무너미 화랑’을 연 시인 황명걸씨가 시초. 황씨에 이어 소설가 백시종이 이 곳에 둥지를 틀었다. 5년 전에는 시인 오규원씨가 작업실을 마련했고, 지난해에는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씨와 ‘욕망의 거리’의 작가 한수산씨가 이 곳에 집필실을 마련했다.

지난해말에는 소설가이자 신화 연구가인 이윤기씨가 과천의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이 곳에 찾아들었다. 올 가을에는 소설가 김주영 윤후명, 시인 문정희씨가 양평군 옥천면 산기슭에 나란히 통나무집을 지어 입주할 예정이다.

이들 뿐 아니다. 소설가 김강윤, 시인 신봉균씨 등 지역문인들까지 합치면 80명 가까운 시인과 소설가들이 양평에 몰려 살고 있다.

8만명이 조금 넘는 인구에 이만큼 많은 문인들이 밀집해 있으니 ‘문인 마을’이라 부를 만하다. 70년대초 서정주 황순원 이원수 등 작가 몇명이 이웃해 살았던 서울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마을’이 이곳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문인들이 서울을 떠나 이 곳에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종면에 사는 시인 오규원씨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데다 탁 트인 산세와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 등 자연의 풍광을 맘껏 볼 수 있어 작품을 쓰기에 더 없이 좋다”고 말한다.

처음엔 요양차 이 곳을 찾았던 오씨는 지금은 서울예술대 강의가 있는 며칠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을 여기에서 보낸다. 99년 발표된 그의 여덟번째 시집인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문학과지성사)에 실린 시편 중 ‘두두물물(頭頭物物)’ ‘강’ ‘안개’ 등 여러 시편들이 이 곳 자연에서 잉태된 것이다.

‘강의 물을 따라가며 안개가 일었다/안개를 따라가며 강이 사라졌다 강의/물 밖으로 오래 전에 나온/돌들까지 안개를 따라 사라졌다/돌밭을 지나 초지를 지나 둑에까지/올라온 안개가 망초를 지우더니/곧 나의 하체를 지웠다/하체 없는 나의 상체가/허공에 떠 있었다/나는 이미 지워진 두 손으로/지워진 하체를 툭툭 쳤다/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강변에서 툭툭 소리를 냈다’(시 ‘안개’)

한수산씨는 지난해 세종대를 휴직하고 남한강 지류가 흐르는 개군면 집필실에 은거하면서 ‘필생의 역작’으로 생각하는 세 편의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단월면에 작업실을 얻은 이윤기씨는 번역가보다는 소설가로서 창작에 전력하고자 전화도 놓지 않고 집필에 매달리고 있다.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도로 사정도 여의치 않아 이 곳 문인들이 모일 기회는 적지만 지역공동체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팔당상수원 보호를 위해 99년말 설립된 ‘맑은물사랑실천협의회’(수석대표 김주영)에도 여러 문인들이 참여하고 있고, 양평 거주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매년 발간하는 ‘양평문학’을 통해 지역문학 활성화에도 나서고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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