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스티븐 호킹의 우주

  • 입력 2001년 3월 23일 19시 10분


◇스티븐 호킹의 우주/데이비드 필킨 지음/동아사이언스옮김/ 257쪽, 2만5000원/성우

우주의 존재를 이해하고 그 생성의 기원과 미래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없는 것 같다. 우리 인간과 유전자의 거의 99%를 공유하는 침팬지도 아프리카의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우주의 비밀에 관해 깊이 사색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입을 것인가 외에도 저 우주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할 줄 아는 이 묘한 동물들의 맨 앞줄에 휠체어를 탄 스티븐 호킹이 있다. 그가 1994년 우리에게 들려준 ‘시간의 역사’를 영국의 BBC가 TV 시리즈로 만들며 묶은 책 ‘스티븐 호킹의 우주’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150억년 지구의 역사가 이야기책처럼 술술 읽힌다. 천체물리학의 이론과 현상들을 대학입시 준비하듯 퍼먹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론들을 발견했거나 그에 대한 증거들을 찾아낸 학자들의 신변잡기를 얘기하며 은근 슬쩍 설명하는 바람에 부담 없이 따라가게 된다. ‘시간의 역사’가 그랬듯이 이 책에도 수학공식이라곤 아인슈타인의 E〓mc² 하나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각종 물리이론과 우주론이 함께 슬금슬금 흘러간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는 지금쯤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뭉쳐졌어야 한다. 하지만 우린 질량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배운다. 르메트르의 ‘시원의 원자’ 이론과 허블의 법칙에 이르면 지구의 나이가 유한하며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곤 블랙홀과 암흑물질의 논의를 거쳐 ‘끈 이론’에 이른다.

21세기로 접어들며 천문학에서 또 한번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또다시 최근 2년간의 발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90%가 단순히 암흑물질이라던 종래의 믿음을 뒤엎고, 그 중 65%는 물질이 아니면서도 에너지를 갖고 있는 이른바 ‘진공에너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인슈타인이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였다고 말했던 우주상수의 개념이 부활한 것이다. 호킹의 표현처럼 우리가 ‘신의 두뇌’를 보다 가까이 들여다보자 별들도 놀라 수군거리는 듯 싶다.

알다시피 호킹은 지체장애인이다. 하지만 그의 뇌 속에 들어 있는 작은 우주가 저 큰 우주를 가늠한다. 호킹은 아직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작고한 학자에겐 주지 않는 상인 걸 생각하며 괜스레 내가 안달이다.

최재천(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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