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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23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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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해는 대기권 진입 후 수 분에 걸쳐 남태평양 해상에 떨어졌으나 피해는 없었다.
미르호 폐기작업을 진행해온 러시아 항공우주통제소(FSC)는 이날 “미르호는 역사적인 임무를 장엄하게 끝마쳤다”고 발표했다. 항공우주통제소에서는 미국 등 63개국 대사와 군사 과학 관계자, 각국 취재진이 몰려 미르호의 최후를 아쉬움과 초조함 속에 지켜봤다.
▼역추진▼
이날 오후 2시7분 미르호가 북아프리카 상공을 지날 무렵 항공우주통제소는 컴퓨터 원격조종을 통해 3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역추진 점화장치를 가동했다. 대기권에 진입할 때 가능한 마찰력을 높여 이때 발생한 고열로 미르호 몸체가 가능한 많이 타야 잔해 피해가 적기 때문이었다.
▼연소▼
미르호는 지상고도 159㎞에서 장엄한 최후의 순간을 향해 시속 약 2만7000㎞로 하강을 시작했다. 30여분 뒤 대기권을 눈앞에 두고 지상통제소는 미르호 몸체에서 태양전지판을 분리했다. 이어 몸체를 몇 토막으로 분해했다. 미르호가 지상통제소의 속박을 벗어나는 최후의 순간이었다. 대기권에 진입하며 미르호 몸체 대부분은 엄청난 충격과 고열로 불타 사라졌다.
시간대별로 본 미르호 폐기 작업 | |
| 오전 9시33분 | 미르호에 연결된 우주 화물선 프로그레스호의 역추진엔진 1차 점화 |
| 오전 11시 | 인도양 213㎞ 상공에서 역추진 엔진 2차 점화. |
| 오후 1시40분 | 남미 대륙 179㎞ 상공 통과 |
| 오후 1시56분 | 아프리카 동쪽 202㎞ 상공 통과 |
| 오후 2시7분 | 북아프리카 159㎞ 상공에서 역추진엔진 3차점화후 고속 하강 |
| 오후 2시59분 | 대기권 진입 |
| 오후 3시 10분경 | 파편 남태평양 해상 추락 |
▼잔해▼
137t의 몸체 중 20∼27t 가량이 엄청난 열에도 불구하고 1500여개의 파편 형태로 남겨졌다. 잔해는 남위 44.4도, 서경 150도를 중심으로 폭 200㎞, 길이 6000㎞의 남태평양 해상에 흩뿌려졌다. 추락 예상 해역에서 조업중이던 27척의 어선은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뉴질랜드 해상안전청이 밝혔다. 만에 하나 폐기작업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고 있던 칠레 일본 대만 등도 아무 탈 없이 미르호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소식에 안도했다
▼목격▼
피지섬 나디에 파견된 CNN 특파원은 “미르호 잔해는 추락 직전 남태평양 상공에 긴 오렌지빛 꼬리를 끌고 날아갔다”며 “잔해는 빛을 내며 넓게 퍼진 채 1분30초 가량 ‘진귀한 쇼’를 펼쳤다”고 전했다. 미르호의 최후를 보기 위해 피지를 찾은 관광객들은 전세기를 타고 비행중 일부 파편이 불덩어리가 되어 태평양을 향해 내리꽂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쉬움▼
과거 소련 시절 미국보다 앞서 나갔던 과학기술수준을 보여주었던 미르호가 사라진 것을 많은 러시아인들은 아쉬워했다. 미르호에 탑승한 적이 있던 우주비행사 파벨 비노그라도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들어가는 돈 일부만 들였어도 미르호는 얼마든지 수리해 쓸 수 있는 상태였다”며 “미르호 폐기는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FSC 앞에서도 미르호 폐기에 반대하는 수십 명이 모여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초상을 들고 “정부는 우주항공 산업을 포기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권기태·홍성철기자·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