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진실규명 못한 채 환수소송?

입력 2001-01-25 18:49수정 2009-09-2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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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4·11 총선 당시 신한국당에 지원된 안기부 돈 940억원을 환수하기 위해 국가(법무부)가 22일 신한국당의 후신(後身)인 한나라당과 강삼재(姜三載) 의원,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차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검찰이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심을 사온 마당에 국가가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안기부 예산이 당시 여당의 선거자금으로 쓰였다면 국가가 환수 절차를 밟는 것은 당연하다. 안기부 예산은 국민이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소송의 전제가 되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다. 여권에서 이 사건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고 검찰도 ‘안기부 리스트’를 흘리는 등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 수사결과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이 김기섭 전 안기부차장을 구속기소하고 강삼재 의원을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한 것도 ‘정치적 처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들 두 사람이 윗선도 모르게 안기부 예산을 빼돌렸다고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국가가 민사소송을 낸 배경에도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안기부 돈의 성격과 불법행위의 주체가 최종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법무부측은 소(訴)제기 시효가 임박해 수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소송을 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먼저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고 그에 따라 국고환수 절차를 밟을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검찰은 지난해 상반기 중 이미 이 사건의 구도를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자금의 성격과 관련해 국가예산이 분명하다고 밝혔지만 한나라당 등 당사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 잔금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 사건의 핵심 부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고 법무부는 서둘러 민사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검찰이 강의원을 기소하면서 국고 손실죄 공범 혐의 외에 예비적으로 장물취득 혐의를 적용한 것은 검찰 스스로도 자금의 성격, 조성 및 분배 과정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모든 판단은 법원의 몫으로 넘어갔다. 때문에 재판 자체가 정치쟁점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법원을 정치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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