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심재철/정치권 주도 '언론개혁' 안된다

  • 입력 2001년 1월 12일 19시 04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급됐듯이, 언론 개혁이 또다시 사회개혁의 중점 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개혁이란 신문이나 방송체계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는 일련의 과정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사고방식에 따른 언론개혁은 우리 사회의 다른 개혁과 마찬가지로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개혁은 어떤 개혁이든지 그 개념상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존 체제의 기능적인 변화와 구조적 변화, 그리고 철학적 변화이다.

이를 언론에 적용하면 기능적 변화란 신문이나 방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습기자의 선발 방식을 바꾸고, 취재기자의 정년을 늘리며, 전문기자나 대기자제를 도입하거나 출입처 제도를 개선하는 방식이다.

구조적 변화는 언론사의 소유 구조와 운영방식 등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틀을 바꾸는 방식이다. 철학적 변화란 기능적이며 구조적인 변화를 넘어서 사회에서 부여한 언론의 역할을 그 근본부터 재검토하는 방식이다. 진정한 언론개혁은 그 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시스템의 변화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개혁 이전과 비교해 확연하게 다르게 언론체계와 그를 둘러싼 사회 시스템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능적 변화는 언론의 점진적 개선을 유도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적 변화 없이 구조적 변화만을 유도한다면 그 시스템은 한순간에 붕괴될 우려가 있다. 우리 사회 개혁의 실패가 이와 같은 급진적 구조의 변화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학부모나 교육자의 의식 변화없이 구조적인 교육개혁을 서둘렀더니 '학교 붕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철학적인 변화없이 급진적인 사회 노동구조의 변화를 시도하면 사회적으로 고급 인력을 낭비하거나 실업자를 양산하는 불상사를 낳을 수도 있다.

그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의 전반에 걸쳐 개혁에 관한 세미나와 토론회를 개최했다. 결론은 늘 비슷해, 지금과 같은 지배구조와 운영방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방송개혁에서 보듯, 언론사의 소유구조를 바꾼다고 해서 과연 그 구성원의 행동규범과 직업의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기존의 신문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발상의 근저에는 우리 신문이 그동안 건전한 민주사회 발전에 장애요소가 되어왔다는 평가가 깔려있다. 물론 그런 적이 없다고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한국신문 초기 도입단계부터 면면히 이어지는 개화운동과 국민의식 계몽 캠페인, 항일과 반독재 그리고 민주사회 형성을 위해 생존의 위협 속에서도 '피나는 노력'을 한 그 공로를 모두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다른 개발도상국가와 비교해 우리만큼 민주적이며 선진적인 언론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과연 몇 나라나 되는가. 특히 80년 이후 우리 신문의 쾌거로 불리는 박종철(朴鍾哲)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폭로적 탐사보도가 없었다면 우리의 민주화 과정은 얼마나 더 늦어졌을까. 우리의 근현대사를 정치권력의 언론에 대한 탄압과 유혹 그리고 견제의 역사라고 본다면 무리일까.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언론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시민단체가 우리의 전통적인 신문의 일가족 소유지분을 30%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자. 그렇다면 나머지 70%는 결국 누구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까.

우리 언론에는 아직도 개선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수도권 시민의 70%가 구독료를 내고 하루 평균 52분씩 매일 신문을 읽고 있다. 우리 국민이 멍청해서 세대를 넘어가며 자기가 선택한 신문을 구독할까. 우리는 이 정도의 언론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한 세기를 더 보냈다.

그런데 다시 정치권이 앞장서서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이루어 내겠다고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정치권에 기대가 크다고 해야 하나. 이제 신문개혁마저 정치권에 맡겨야 되는 걸까.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시장경제적 민주사회가 아닌가. 집 뒷동산에 올라가 보니 "산불은 순간, 복구는 평생"이란 표어가 눈길을 끌었다.

심재철(고려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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