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감추고 싶은 ‘한국제’

  • 입력 2001년 1월 9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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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300평 남짓한 널찍한 공간에 차려진 삼성전자 부스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황이다.

관람객 수와 부스면적, 제품의 구색만 놓고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소니 등과 맞먹는 수준. 디지털TV 컴퓨터 MP3 등 첨단 전자제품을 리모컨 하나로 작동시키는 ‘홈 네트워크’ 시스템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은 이런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가끔씩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브랜드 이미지가 외국 경쟁업체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80년대에 품질이 떨어지는 컬러TV를 미국시장에 적당히 내다 파는 바람에 ‘한국제품은 값은 싸지만 고장이 자주 나는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고백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신형 디지털TV 모델을 선보인 LG전자는 자체 브랜드를 포기하고 미국내 자회사인 ‘제니스’의 이름으로 출품했다. LG 간판으로는 미국 소비자들을 파고들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

삼성과 LG부스에서 기업과 제품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알리는 표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디지털가전 시장에서 소니 필립스 등과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은 시드니올림픽을 후원한 업체라는 점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한국의 국가브랜드인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는 몇 점이나 받을 만한지 진사장에게 물었다. 그는 “정치가 발전하면 나라 이미지도 좀더 좋아지지 않겠느냐”면서도 “우리의 임무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경제의 국경이 허물어진 글로벌 시대라지만 국가 브랜드는 막강한 위력을 지닌 마케팅 요소 중 하나다.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사실이 외국 중산층에게 물건을 팔 때 도움은커녕 발목을 잡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국제경쟁의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별로 좋지도 않은 국가 이미지를 더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박원재<경제부>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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