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개혁과 '막무가내 인사'

  • 입력 2000년 12월 10일 18시 37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어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온 국민이 경축할 일이다. 김대통령은 노벨상을 받고 귀국하는 대로 ‘국민이 바라는 국정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국내 민심은 솔직히 말해서 노벨상 수상 경축보다 수상 후 국정 개혁에 보다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마치 때를 맞추듯 벌어진 ‘막무가내식’ 경찰 인사와 ‘이틀 만의 해임 해프닝’은 현정권의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심지어 김대통령의 ‘개혁 결단’에 대한 기대를 냉소로 바꾸어 놓고 있다.

서울경찰청장에 임명된 지 이틀 만에 해임된 박금성(朴金成)씨는 출신고교와 학력을 속이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출신학교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권력의 카멜레온’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말썽이 나자 야간대학을 다녔느니, 청강생이었느니 말도 바꿨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엄정히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의 최고위 핵심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박씨는 이 정부 출범 이후 2년8개월 만에 총경에서 치안정감까지 3계단을 건너뛰는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렸다. 남들은 보통 7년 이상 걸리는 자리다. 서울경찰청장에 임명된 데는 여권 실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경찰 안팎에 파다하다. 결국 지역편중인사라는 비난 여론에 도덕성 문제까지 겹치면서 박씨는 ‘최단명 수도치안총수’로 도중하차했다.

심각한 문제는 국정 개혁을 하겠다는 정부가 이런 식의 ‘막무가내 인사’를 했다는 점이다. 지역편중인사란 비판이 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경찰사상 초유의 ‘호남출신 경찰청장―서울청장’ 체제를 밀어붙이는 ‘권력의 오기’로는 국정 개혁이 될 수 없다.

이 정부는 특정지역 편중인사 얘기가 나오면 줄곧 ‘인사의 균형’을 내세웠다. 과거 정권에서는 더하지 않았느냐는 항변도 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한다면 정권교체의 의미는 어디서 찾겠는가.

정부는 얼마 전 경영개선을 제대로 못하는 공기업 사장은 중도에 퇴진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얘기다. ‘여권의 식객’들에게 전리품처럼 나누어주는 낙하산인사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경영책임을 묻겠다니 소가 웃을 노릇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말만 해서는 안된다. 말 따로 행동 따로는 안된다. 김대통령이 귀국 후 단행할 국정 개혁의 핵심도 공정한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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