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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27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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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중국집에서 술 마시는 거,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게다가 고량주를 싫어한다면 미칠 노릇이죠.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리는 독주에 그 기름진 안주,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중국 어디어디에서 공수해왔다'는 이상야릇한 병에 담긴 중국술들... 중국말은 제대로 못해도 먹고 노는 것 만큼은 중국식으로 해야한다는 이상한 학풍 탓이랄까요?
늘상 무거운 마음으로 중국집 한 귀퉁이를 차지하던 저를 달래주는 건 달콤새콤한 탕수육이었습니다. 바삭바삭하게 튀긴 고기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려 정신없이 먹다보면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고량주 공세도 피할 수 있고 배도 슬슬 불러지고 무엇보다 맛있고... 우중충한 중국집을 반짝반짝 빛내주는 최고의 메뉴였죠.
탕수육은 만만해서 더 이쁜 요리입니다. 집들이를 하거나 친구가 갑자기 놀러왔을 때 일단 중국집에 전화해서 탕수육 한그릇 시켜놓으면 마음이 든든해지지요. 돈 만 몇천원에 이렇게 식탁을 푸짐하게 만들어주는 요리란 흔하지 않지요. 가끔 아교풀처럼 끈적끈적한 소스를 들여다보며 '뭐가 들어가서 이렇게 끈끈하지?'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탕수육이 만들기도 만만할꺼라고 생각한다면 세상 날로 먹으려는 거나 다름없죠. 전 탕수육을 만들어 본적이 있습니다. 딱 한번! 결혼하기 전 요리학원을 다니던 시절이었죠. 본전의식 때문인지 폼나고 거한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탕수육 정도는 예비신부의 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하...탕수육이라고요? 고기 튀겨서 소스 부으면 끝 아닌가요?" 하지만 요리선생님의 지도하에 만든 최초의 탕수육은 녹말소스에 불은 고기튀김이라고나 할까. 제가 꿈꾸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탕수육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요리는 몸놀림이 재빠르지 않고는 성공하기 힘들겠더라구요. 고기를 바짝 튀겨놓음과 동시에 펄펄 끓는 소스 준비가 끝나야하니 이 절묘한 타이밍을 둔한 제가 무슨 재주로 맞추겠어요? 고기를 노릇노릇하게 튀겨놓은 후 녹말물을 정교하게 배합해서 소스를 만들다보면 고기는 어느새 눅눅해지고 소스는 쫄아든단 말씀이죠. 상에 내기 직전에 고기를 한번 더 살짝 튀겨주면 바삭바삭하게 먹을 수 있다는데 그건 탕수육 하나만 차릴 때 얘기고 이것저것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는 와중에 탕수육 고기 다시 튀겨낼 여력이 있는 여자, 전 아니거든요. 그 후 탕수육은 으레 '사먹는 것이 돈 버는 것이려니...'하고 살아왔습니다.
얼마 전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니 파인애플을 넣은 탕수육을 만들어놨더라구요. 물론 고기가 바삭바삭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파인애플이 들어가서 그런가 달콤하고 상큼한 것이 색다른 맛이었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한 친구들을 보면 '나도 뭔가 보여줘야지...'하고 결심하는데 그런 결심은 왜 이틀 이상을 못가는 걸까요? 오늘도 갑자기 저희 집에 놀러오신 시부모님을 뵙자마자 전 황급히 중국집에 전화를 했답니다..."아저씨 쇠고기 탕수육 하나, 빨리요!" 저희 시아버님은 돼지고기 안드시거든요.
◇날렵한 몸놀림으로 탕수육 만드는 법
재 료 : <고기> 돼지고기 300g, 간장 1큰술, 식용유, 소금, 후춧가루, 맛술 조금씩, 녹말물 앙금 2/3컵, 다진생강 1작은술
<소스> 물 1컵, 황설탕 1/2컵, 녹말물 4큰술, 간장 1큰술, 식초 2작은술
오이 1/2개, 양파 1/2개, 청홍 피망 조금, 파인애플 2개
만들기 : 1. 돼지고기에 간장, 소금, 후춧가루, 다진 생강, 맛술을 넣어 20분 정도 재둔다
2. 재어둔 돼지고기에 녹말물 앙금을 섞어 튀김옷을 입혀둔다
3. 오이, 양파, 피망, 파인애플을 네모나게 썰어둔다
4. 170∼180℃에서 고기를 튀긴다
5. 소스 재료를 끓이다가 야채를 넣고 살짝 끓인다
6. 불을 줄이고 녹말과 물을 1:1로 배합한 녹말물을 살살 흘려넣으며 저어준다
7. 바삭하게 튀긴 고기에 소스를 뿌린다
ps. 중문과 다니면서 고량주 마시는 거보다 더 짜증나는 일은 미팅할때마다 주책없는 남자애들이 중국어 해보라고 시키는 거였습니다. 한두번은 순진하게도 몇마디 지껄여줬더니 이 자식들이 이렇게 화답하는 겁니다. 왜 그런 거 있죠? "진땅에 장화, 마른땅에 운동화, 띵호아∼" ...철지난 개그로 나를 열받게 하던 아그들아, "띵호아"의 정확한 발음은 "팅하오"란다!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