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신간]'興亡의 역사'서 배우는 삶의 지혜

  • 입력 2000년 11월 10일 18시 50분


<스페인 제국사’와 ‘멕시코 혁명사’는 아주 대조적인 제목과 내용을 가진 두 권의 역사책이다. 그러나 둘 다 국내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각각 번역서와 저서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충실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고 친절하게 역사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제국사 1469―1716 / 존 H 엘리어트 지음 김원중 옮김 / 460쪽 1만5000원 까치

전체 면적 중 10%는 돌산, 35%는 불모지, 45%는 겨우 농사지을 정도, 비옥한 땅은 10%뿐인 나라. 피레네산맥으로 인해 유럽 대륙으로부터 고립돼 있는 이베리아반도. 16∼17세기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군림했던 스페인은 이 척박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스페인이 이 열악한 조건을 기적적으로 극복하고 성장해 거대한 제국을 경영하다가 백일몽처럼 영화를 상실하게 되는 일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는 수 세대를 거쳐 많은 역사가들을 괴롭혔다.

영국출신의 역사가로 옥스퍼드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그 비밀을 차근차근 파헤쳐 설명한다. 일찍이 국가 통일을 이룬 후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그 왕조에서 사위를 맞아들인 스페인왕실은 합스부르그 왕조의 유산을 물려받아 네덜란드 벨기에와 이탈리아의 반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까지 영토를 넓힌다.

여기에 식민지의 귀금속이 유입되고 자본주의혁명이 일어나면서 스페인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스페인은 근대로의 전환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중세의 기사도적 사고방식으로 전쟁만 계속하다가 선두에서 근대로 이행할 수 있었던 기회를 상실한다. 스페인제국은 결국 변신의 기회를 상실하면 몰락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기며 사라지게 된다.

스페인에서 스페인 근대사를 전공한 옮긴이는 순조롭게 읽히는 이 책의 장점을 “글은 읽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저자의 공로로 돌린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멕시코 혁명사 / 백종국 지음 / 546쪽 2만2000원 한길사

11월20일 멕시코는 혁명 90주년을 맞이한다. 혁명 당시 혁명 주도세력이 결성했던 제도혁명당은 올해 7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71년만에 처음으로 정권을 상실했다. 1910년 혁명 후 사실상 최초의 정권교체였다. 도대체 어떤 혁명이었기에 90년 동안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쿠데타로 얼룩진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쿠데타 없이 정권을 유지해 온 멕시코 ‘제도혁명당’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제야 무너진 까닭은?

경상대 교수로 비교정치를 전공한 저자는 “멕시코인들의 역사적 경험을 나눔으로써 우리의 삶을 보다 값지고 풍부하고 지혜롭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멕시코 혁명과 정권유지의 핵심은 민중혁명의 정통성”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혁명과 자본주의적 발전 전략의 모순, 지배계층을 차지한 대지주, 미국 자본주의의 영향 등으로 인해 1968년 대학살 사건 이후 올해의 정권교체까지 체제 붕괴는 서서히 진행됐다.

그 혁명과 건설 과정을 보며 저자는 역사의 보편성을 읽어 나간다. 1차혁명을 주도했던 마데로에게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상주의자의 한계를 읽고, 2차혁명을 이끌었던 우에르타에게서는 많은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권력욕의 문제를 읽어낸다. 그리고 혁명정부의 기반을 닦은 카르데나스, 지혜로움과 현실성과 과단성을 겸하고 자기 임무에 충실했던 그를 보면서는 우리에게 이런 지도자가 없었음을 안타까워한다. 정확하면서도 쉽게 설명해 주려는 노력과 함께 혁명일지, 인명찾기 등 관련 자료에 대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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