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제구실 못하는 축구협 '기술위'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9시 15분


95년 초 애틀랜타올림픽 대표선수 선발을 위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회의 도중 비쇼베츠 감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94년 10월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지휘봉을 넘겨받은 비쇼베츠 감독은 그 해 겨울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선수들을 직접 확인하고 대표선수 명단을 추렸다.

그러나 그와 기술위원회가 작성한 명단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설전을 벌이던 기술위원회는 “양쪽 명단에서 반반씩 선수를 추리자”고 했고 비쇼베츠 감독은 “대표선수를 어떻게 타협으로 뽑을 수 있나”라며 일어선 것.

그럼 허정무 감독의 경우는 어떨까. 비쇼베츠 감독과 정반대로 허감독은 아무런 견제 없이 선수선발을 했다. 기술위원회가 ‘허정무 후원회’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한마디로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그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수 선발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술위원회는 그간 한국축구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해외 정보 수집에도 어두웠다.

9월 시드니올림픽 당시 일본 강화위원들은 상대팀 캠프 근처에 진을 치고 끊임없이 보고서를 만들어낸 반면 한국은 경기 당일만 상대팀 경기장에 날아가 조악한 보고서 한 두장 띄우는 데 그쳤다.

평소에도 일본은 지방 축구협회마다 강화위원회가 있어 선진 기술을 유소년축구에까지 포괄적으로 보급해 급속한 전력 향상을 이루고 있는 반면 한국은 대표팀 감독이 프로선수들을 자신의 전술에 맞추기 위해 몇날 며칠을 두고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에 대해 한 축구 관계자는 “기술위원회가 유명무실한 것은 기본적으로 기술위원이 비상근 무보수 봉사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는 기술위원의 역할 분담이 잘못돼 있었다는 지적도 했다. 가능성 있는 선수들의 상태를 끊임없이 체크하고 보고하기보다 선발권 자체를 행사해온 것.

축구협회는 최근 기술위원회 개편과 관련해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전직 기술위원장은 “98프랑스월드컵 직후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의 사례를 현지에서 집중 분석한 만큼 정답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실천뿐”이라고 강조했다.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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