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의약정협의회 불안한 출범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8시 59분


의―약―정(醫―藥―政)협의회가 지난달 31일 우여곡절 끝에 처음 열렸지만 의료계는 1일 이후에는 협상타결 시한을 넘긴다는 이유로 3자 회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료계와 약계가 한자리에 앉아 약사법 재개정 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 자체를 의약분업 사태의 해결가능성을 높이는 신호로 보지만 의료계는 점점 강성분위기로 흘러 의약분업 사태가 막판 고비를 맞고 있다.

▽3자 타결 가능할까〓이경호(李京浩)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은 31일 약―정(藥―政)합의결과를 설명하면서 “의약계 모두 서로간의 신뢰와 협력 없이는 의약분업이 안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므로 결국은 타협점을 찾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약사법 재개정 문제 타결시점과 관련해서는 “정부로서는 시한을 정하지 않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정기국회 회기 중에 약사법 개정안이 상정되려면 늦어도 11월중에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처럼 3자 협의회가 처음 열린 데 의미를 부여하고 최종타결을 낙관하는 분위기이지만 의료계는 “정부와 약계가 약사법을 재개정할 의지가 없이 시간을 끈 것이 아니냐”며 강력 투쟁을 경고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권쟁취투쟁위원회 주수호(朱秀虎)대변인은 “약사법 재개정은 정부가 원칙에 입각해서 처리할 문제이지 의료계―약계와 타협할 성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약사의 임의조제와 불법진료를 막고 의약분업을 원칙적으로 하자는 게 의료계 입장이므로 정부와 의료계―약계가 흥정하듯이 약사법 문제를 다뤄서는 안된다는 것. 주씨는 “그동안의 의―정(醫―政)대화를 통해 의료계 주장이 무엇인지는 정부가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파국의 가능성〓정부가 의료계 주장을 100% 수용하기 힘들므로 의료계가 이를 명분으로 삼아 다시 총파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전공의들이 응급실과 분만실 근무 등 모든 진료에서 손을 떼는 최악의 의료대란이 우려된다.

의료계는 현재 의대 4학년 학생들이 의사 국가고시 시험을, 전공의 4년차들이 전문의 시험을 거부한 것은 물론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집단유급을 감수하겠다고 결의하는 등 강성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쟁투 산하 비상공동대표 10인 소위가 정부나 약계로부터 ‘완전한 승리’가 아닌 ‘부분적 양보’를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는 온건파의 입지가 점점 좁아진다는 뜻이다.

의협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우리가 5개월 가까이 투쟁했지만 도대체 무엇을 얻었나. 사태를 빨리 해결하려면 응급실에서도 철수하는 등 강력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물론 의료계 일부 인사들도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의료계는 성과물이 커야 투쟁철회의 명분이 선다는 판단을 하게 돼 그만큼 정부나 약계와의 협상에서 유연한 자세를 갖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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