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옥/해외입양보다 훨씬 부끄러운 일

  • 입력 2000년 10월 30일 18시 50분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지역 주민들이 그 곳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정투쟁을 벌여왔는데 대법원이 패소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우울한 소식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80년대 중반 필자가 근무하는 동방사회복지회에서 특수학교를 지을 때도 주민들이 “그런 시설이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진다”며 학교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당국에 진정서를 내고 공사장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친 채 길에 드러눕는 등 심하게 반대한 적이 있다.

그 때문에 공사가 몇 달씩 중단됐던 사실을 기억하면 지금도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잘 살게 되었는데 아직도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시킨다고 비난하며 국가의 수치라고 부끄러워한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 가운데 40%에 가까운 아이들이 심각한 ‘의료적 문제’를 갖고 있거나 문제의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다. 이들 중에는 친부모라도 키우기 어려운 불치의 병이나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도 많다. 이들을 키워줄 양부모를 국내에서 찾는 일은 물론 불가능하다.

그토록 어려운 장애아를 입양해 키우는 외국인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송구스럽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기조차 하다.

작년 한해 국내로 입양된 장애아동의 수는 불과 6명으로 전체 입양아의 0.1%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가 내 이웃에 있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런 우리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모습이 소위 우리가 자처하는 선진국 대열에 오른 나라의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것이지, 국내에서 부모를 찾지 못해 해외에서라도 그들의 행복을 찾아주려는 것이 결코 부끄러움일 수는 없다.

‘이 땅에 태어난 아기 우리가 키우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우리는 지난 봄 전국의 거리를 누비며 가두캠페인을 벌이고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한 걷기대회를 실시하는 등 국내에서 양부모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러나 다른 핏줄의 아이를 내 가족으로 만드는 일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관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만큼 누가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내 가족이 아닌 주변의 불행을 돌아보고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하물며 약자의 불행에 방관도 무관심도 아니고 오히려 방해를 한다면 우리는 진정 부끄러운 후진국 대열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재활원의 한 장애아동을 돕고 있는 후원사의 한 분은 개인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상당액의 후원금을 한달도 거르지 않고 보내오고 있다. 이 분은 “내 나이 50이 넘었으니 입양은 할 수 없고 더구나 장애아 키울 자신은 없으니 아이 한 명 키우는 한 달 생활비라 생각하고 온가족이 절약해 후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분들의 고귀한 사랑은 각박한 이 현실 속에서 실로 한줄기 빛과 위안이 아닐 수 없다.

김태옥(동방사회복지회 후원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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