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찜쪄먹기]아시모프 '2백 살을 맞은 사나이'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5시 31분


◇자유를 갈구한 로봇

앤드류 마틴은 제랄드 마틴씨네 집의 가정용 로봇이다. 그 집에는 앤드류가 큰아씨, 작은아씨라 부르는 딸이 둘 있는데, 특히 작은아씨가 앤드류를 무척 좋아했다.어느날 언니의 목걸이를 보고 샘이 난 작은아씨가 앤드류에게 칼과 나무조각을 주면서 목걸이장식을 만들어달라고 졸랐다. 작은딸이 가져와 자랑하는 목걸이장식을 본 주인은, 그것이 앤드류가 조각한 것임을 알고는 매우 놀란다. 로봇은 원래 인간처럼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지만, 앤드류의 전자두뇌는 뭔가 이상이 생겨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앤드류는 갖가지 나무장식이며 가구를 만들어 팔아 주인이 큰 돈을 벌게 해줬고, 주인은 그 돈의 절반을 앤드류 이름으로 예금했다.

어느날 앤드류는 주인에게 말한다. “주인님, 저는 제가 가진 돈을 전부 주인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 대신 자유를 얻고자 합니다.”

“뭐라고? 맙소사! 난 로봇 따위가 자유를 원한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건 법의 판단에 맡기겠다.”

법정에서 작은아씨는 앤드류를 위해 열렬한 변론을 폈고, 이어서 앤드류가 발언을 했다.

“이 법정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유란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유를 원합니다.”

마침내 법원의 판결은 내려졌다.

“자유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진보된 정신을 가진 존재라면, 그게 무엇이든 자유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자유를 얻은 앤드류는 조그만 집을 짓고 그 안에 도서실과 작업실을 만들어 목공예 일을 계속했다. 세월이 계속 흘러 앤드류는 주인의 임종을 지켜보게 됐다. 작은아씨도 아들 조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앤드류가 사람들로부터 함부로 부당한 취급을 받지 않도록 로봇보호 특별법안을 제정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나중에는 조지도 늙어서 그의 아들 폴이 앤드류와 만나 얘기를 나누곤 했다. 앤드류는 이렇게 주인집 사람들과 6세대가 넘도록 계속 관계를 맺어 갔으며, 또한 꾸준히 자신의 몸을 인간과 가깝게 개조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공부도 열심히 한 그는 어느덧 인공생리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권위자가 됐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소원인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앤드류의 연구 덕분에 인류는 여러가지 큰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로봇으로 대접했을 뿐이다.

과연 인간과 로봇의 궁극적인 차이는 뭘까? 앤드류는 이런 고민 속에서 마침내 모종의 조치를 취했다. 그는 세계의회에 나가서 이렇게 발언했다.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그 수명에 있습니다. 인간의 목숨은 유한하지만, 로봇은 부속을 바꾸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지요. 사람들은 영원히 사는 로봇은 용납하지만, 영원히 사는 인간은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전에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지금 제 두뇌에서는 조금씩 누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뒤면 저는 죽게 될 것입니다.”

앤드류의 마지막 행위는 전세계 인류의 광범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세계 의회는 그를 인간이라고 규정지었다. 앤드류는 2백세의 생일날 행복하게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중얼거린 가냘픈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작은아씨….”

◇ 5백여편 작품 펴낸 의대 교수 출신의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

아시모프(1920-1992)는 달리 소개가 필요없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SF작가다. 서구에서는 흔히 SF문학계의 3대 거장을 일컬어 ‘빅 쓰리’(The Big Three)라고 표현하는데, 아서 클라크(‘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 ‘라마와의 랑데뷰’ 등), 로버트 하인라인(‘스타쉽 트루퍼스’ 등), 그리고 아시모프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중에서도 아시모프는 엄청난 다작가로서 단연 돋보인다. 대략 5백여편으로 추산되는 그의 저서들에는 교양과학서와 SF소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셰익스피어 문학 입문’, ‘성경 입문’, ‘로마 제국’, ‘신화의 탐구’, ‘프랑스의 역사’와 같은 인문학적인 책들도 많다. 흔히 말하는 팔방미인이다.

아시모프는 1920년 소련 페트로비치에서 태어나 3세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갔다. 콜롬비아대학에서 생화학을 공부했으며 보스턴 의대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 1958년부터 강의를 그만두었다.

소설 습작을 시작한 것은 10대 초반이었으며 불과 19세에 SF작가로 등단했다. 오늘날 SF문학사상 가장 기억할만한 단편의 하나로 꼽히는 ‘전설의 밤‘(Nightfall)은 그가 21세 때 발표한 것이다.

그는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치는 SF의 황금시대에 성장해, 이후의 SF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주역이다. 특히 머나먼 미래에 은하계 전체에 인류문명이 퍼진 시점을 가정해 은하제국의 흥망을 다룬 장대한 대서사시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SF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고전이다. 1942년 잡지 연재로 처음 시작된 이 대하소설은 사회통계학 기법을 도입해 사회의 변화를 최소한의 오차로 예측하는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의 개념을 창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7년 그가 편집 고문으로 참여한 ‘아시모프의 SF매거진’이 창간됐다. 오늘날 이 잡지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구 SF문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SF문예지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 로봇 소설의 백미

아시모프의 로봇시리즈 서두에는 늘 ‘로봇공학의 3원칙’이 등장한다. 이 원칙들은 아시모프가 저명한 SF편집자인 존 캠벨과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추출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되며, 인간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행동을 해서도 안된다.

2. 로봇은 제1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3. 로봇은 제1법칙과 제2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만 한다.

이 3원칙은 원래 작품 속에서 로봇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설명하기 위해 설정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공지능이나 로봇공학 연구자에 의해서도 진지하게 검토될 정도다. 물론 3원칙을 준수할 수 있는 고도의 전자두뇌 제작은 아직 요원한 일이지만, 향후 로봇공학자들이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아시모프의 작업은 ‘SF의 사회적 예측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시모프의 로봇소설 중 백미는 단연 ‘2백살을 맞은 사나이’다. 1976년 처음 중편으로 발표된 이 소설은 이듬해 SF문학계의 최고 권위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석권했고, 1993년 장편소설 ‘양자인간’으로 개작됐다. 한편 ‘2백살을 맞은 사나이’는 1999년 크리스 콜롬버스가 감독하고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1월 말 ‘바이센테니얼 맨’(The Bicentennial Man)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된다.

‘2백살을 맞은 사나이’는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하는 화두를 무척 심도 있게 파헤쳤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자각하고 있는 존재는 누구든, 무엇이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통해 앤드류는 자유를 얻는다.

하지만 로봇 공학의 3원칙은 여전히 그를 옥죄고 있는 굴레다. 그는 불량배 무리들과 마주쳤다가 자신의 몸이 분해될 위기에 처하는 사건을 겪는다. 그런데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이 제1원칙은 로봇 스스로 자기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제3원칙보다 우선한다. 그래서 그는 자유롭지만 인간이 아닌 스스로의 처지에 몹시 절망한다. 노예가 사라진 문명사회에서 과연 다른 어떤 존재가 앤드류만큼 절실하게 인간이기를 갈망할 수 있을까?

인간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인간은 아닌 존재인 로봇이야말로 SF 장르만이 제공할 수 있는 문학 소재다. 이 점에서 ‘2백살을 맞은 사나이’는 20세기의 고전으로 갈수록 가치를 더할 것이다.

박상준(SF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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