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현각스님 "백일간 默言정진 들어갑니다"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9시 07분


미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늘 낡은 블루진에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는 현각(玄覺·속명은 폴 뮌젠·36)스님. 누덕누덕 기우고 헤진 장삼을 입고 23일 약속 장소인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 나타났다. 극성스런 보살님들이 장만해준 좋은 장삼이 없는 것은 아닐 터지만 낡은 것이 편하고 좋단다.

―곧 토굴에 들어간다면서요….

첫 질문을 떼기가 무섭게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미처 휴대전화를 끄지 못했다.

◇ 그동안 在美 한국인 상대 설법

“전화기 자꾸 쓰면 충전해야 합니다. 이곳저곳 법문하러 다니면서 혀를 너무 많이 써 힘 빠졌어요. 29일 화계사에서 ‘굿바이 파티’하고 산속 암자 들어가 백일동안 완전히 혼자서 묵언정진(默言精進)하면서 힘 충전하겠습니다.”

―설법다니느라 무척 바쁘다던데….

“이번주 날마다 법문입니다. 23일 서울 중랑구청, 24일 충남대, 25일 배재대, 26일 대전대, 27일 경북대, 28일 조계사에서….”

하안거(夏安居)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워싱턴 LA 등을 돌며 신세대 재미교포를 상대로한달간 설법했으며 요즘도 하루도 제대로 쉴 날이 없는 강행군이다.

“제가 특별한 거 없습니다. 한국사람 그동안 미국 것 좋아하면서 자기 가진 것 얼마나 중요한지 잊어버렸어요. 미국에서 리처드 기어, 멕 라이언, 톰 크루즈 등 할리우드 스타들 불교에 관심 많아요. 한국 사람이 한국 것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면 듣지 않다가 서양 사람이 한국 것 중요하다고 말하니까 조금 마음 생기나 봐요.”

◇ 한국 사람 자기것 중요함 망각

―숭산스님이 활동을 좀 줄이라고 했다던데….

“작년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출간한 직후 큰 스님이 저를 아끼는 마음에서 서울 시내에서 도망가 있으라고 한 적 있어요. 한국에서 살기 힘들어요. 힘센 스님들 ‘와서 좀 해라’고 하면 어쩔 수 없고 또 ‘도와 달라. 도와 달라’ 부탁하는데 뿌리칠 수 없어요. 아이 캔트 이스케이프(I can’t escape). 한국 너무 좋아하고 한국 사람 원하는 것 그냥 도와드리고 싶어요.”

윗사람 말 거역못하고 정에 약한 것이 한국인이 다 됐다. 아니 그는 자신이 전생에 한국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 창조론 얘기할 때나 불교도가 전생 얘기할 때는 어떻게 현대인으로서 저런 얘기를 할 수 있나는 생각이 듭니다.

“전생은 불교의 가르침 아닙니다. 부처님 나타나시기 전부터 있던 거예요. 영어로 커즈 앤 이펙트(Cause and Effect·인과)입니다. 여기 찻집에 불 다 꺼요. 저쪽에서 야구공 던지는 순간 스위치 올려봐요. 공중에 떠 있는 야구공 볼 수 있어요. 순간 볼이 어딘가에서 날라와 어딘가로 간다는 것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압니다. 전생 금생 그 다음 생도 마찬가집니다.”

팔을 휘저어 볼 던지는 흉내를 내고 일어서 저만큼 가 볼 받는 흉내를 낸다. 제스처가 큰 것이 영락없는 미국인이다.

일주일전쯤 금강산에 취재를 갔다가 숭산스님을 만났다. 숭산스님은 대봉 무심 무량 등 외국인 스님을 줄줄이 데리고 금강산을 구경왔다. 전세계에 숭산스님의 법제자로 공식 인정받은 이가 7명인데 하나같이 외국인이라는 건 좀 이상하다.

―숭산스님은 왜 한국 스님에게는 법을 전수해주지 않나요.

“큰스님 평양에 사실 때 집에 큰 농원이 있었어요. 늙은 나무가 맛있는 과일을 맺을 수 없다는 것 잘 알아요. 한국 불교 전통 너무 오래돼서, 한국 스님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오히려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Only Don’t Know Mind)’ 잘 안들어간다고 생각하나 봐요. 단순하고 맑은 경험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같아요.”

―참 숭산스님의 법문을 모은 ‘선의 나침반’ 한국어판은 언제 나오나요.

“한달반후 나올 거예요. 본래 97년 미국에서 ‘더 컴파스 오브 젠(The Compass of Zen)’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어요. 인기 많았어요. 숭산스님이 서툰 ‘김치영어’로 설법한 내용 모은 것인데 ‘김치영어’ 한국말로 옮기려니까 분위기 안 살아나 되게 고생했어요.”

◇ "나도 인간…때론 '욕망' 느껴

현각스님은 기자와 마찬가지로 64년생이다. 아직 30대 중반. 그의 욕망을 묻는다.

―돈이나 섹스에 대한 욕망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나이에는 당연히 있어야 돼요.” 좀 어이가 없다.

“돈 자체가 섹스 자체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것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것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그것이 당신을 얼마나 컨트롤하는 지 그게 문제예요.”

―스님도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욕망을 느끼기도 하나요.

“저도 인간입니다.”

―(내친김에) 숭산스님이 흔히 마실 땐 마실 뿐, 먹을 땐 먹을 뿐 하듯이 그때 ‘오직 그럴 뿐’ 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웃으며) 저도 인간입니다. 그 밖에 다른 대답없어요. 차 마시세요.”

옛날 조주(趙州)선사란 분이 있었다. 누가 그에게 찾아와 “도(道)가 무엇입니까” 물어 선사가 답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보게 이리 와서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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