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현장21]'자유의 신 in Korea' 제작현장 · 수송작전 르포

  • 입력 2000년 10월 19일 22시 45분


“세차를 안해서 무슨 공사장 차 같은 게 하나 있을거예요”

경기도 파주의 월롱역으로 마중나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임옥상화백은 말했다. ‘세차 안한 차 어디 한두번이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차를 찾는데 어디 사막 모래구덩이서 방금 뛰쳐나온 듯한 차 한 대가 나타났다. '작업환경이 만만치 않겠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작업장으로 향하는 길. 탱크저지선과 군용 트럭, 그에 아랑곳 없이 나락으로 풍성한 들판을 달리자 저 멀리 '자유의 신 in Korea'가 눈에 들었다.

미니어처는 '장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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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미군폭탄으로 자유의 신 in korea를'

애초 계획한 절단된 다리는 무게를 지탱해줄 의족으로 바뀌어있었다. 의수와 의족에 대한 부질없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차갑게 번쩍이는 의족은 상이용사의 갈고리 손처럼 매향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리자 말그대로 '공사장'이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폭탄조각에 크레인 차 덜덜거리는 소리, 용접할 때 쏟아지는 뻘건 불똥, 쉴새없이 두들겨대는 망치소리…

정신없이 이리 찍고 저리 돌리고 하다 임 화백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인사할 경황도 없었죠?"

짧은 통성명 후, 임 화백은 함께 일하는 청년들과 계속 작업을 진행했다.

지켜보던 한 사람이 말한다. "어때요, 직접 보니까? 머리속으로는 감이 잘 안오던데,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더라고. 놀랬어요"

옆에 있던 이가 말한다. "3일만에 용접 배워서 이제 직접 하시는거예요. 원래 다루던 소재가 아니라 느낌이 다르신가봐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창 작업에 열중하던 임 화백은 대뜸 청년들에게 '가운데'를 떼내라고 말했다. 가슴에서 다리에 이르는 선이 너무 밋밋하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정확히 성기가 있을 자리.

중심부를 떼어내자 임 화백은 길쭉한 모양의 폭탄파편을 대신 붙이자고 했다. 그리곤 주변사람들을 모두 불러 작품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며 폭탄의 용접위치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앞이 막힌 쪽을 겉으로 하자 임 화백은 '남자 신'이 되었다며, 폭탄을 뒤집으라고 했다. 구멍 뚫린 쪽이 겉으로 드러나자 주변에서는 "그럼 성이 바뀌었네"라고 말했다. 임 화백은 '여자 신'이라기 보다 거세당한 느낌이 나지 않냐며 그대로 놓고 각도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작품은 계속 바뀌어가고 있었다. 처음 작업장에 도착할 당시 '밋밋한' 중심부를 지녔던 자유의 신은 '포인트 있는' 중심부를 지니게 됐다. 둔해보이던 왼쪽 종아리는 날렵해졌고, 빈약했던 오른쪽 엉덩이는 튼실한 골반을 갖게 됐다.

임화백은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자유의 신'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죽음의 파편, 폭탄을 생명의 형상으로 승화하고 싶었습니다. 수직으로 일어서는 '자유의 신'을 통해 매향리 주민들이 강한 힘을 되찾기 바랍니다"

신장 6m, 폭 2.5m 자유의 신은 '철제 침대'에 누운 채로 트럭에 실려 20일 새벽5시 아셈2000 민간포럼 행사가 열리고 있는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파주=오세린/동아닷컴기자 ohse@donga.com

통일동산서 올림픽공원까지…'자유의 신 in korea' 수송작전

경기도 화성군 미공군 폭격장 인근 매향리 주민들의 고통을 형상화한 조형물 '자유의 신 in korea'가 20일 오전 8시 아셈 반대 집회장소인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 공원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 첫 나들이를 나서는 '자유의 신in korea'

'자유의 신 in korea'는 20일 오전 6시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에 위치한 임화백의 작업장을 떠나 경찰 차량의 도움을 받으며 1시간 30여분만에 목적지인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에 무사히 도착했다.

11톤 트럭에 눕혀진 '자유의 신'은 높이 6m, 무게 4톤의 크기이며, 탄피와 파편을 용접해 한쪽 다리에 의족을 댄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경찰서와 일산경찰서는 출발 장소에 순찰차를 보내 파주경찰서는 산남공원까지, 일산경찰서는 올림픽공원까지 관할 구역을 정해 차량을 인도했다.

◀선두에 경찰차량을 앞세우고 자유로를 달리고 있는 운반차량

이동 중에는 당초 자유로를 거쳐 올림픽대교를 넘어 행사장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차량인도를 맡은 일산경찰서 소속 순찰차가 서울지리에 익숙치 못해 올림픽 대교로 진입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천호대교를 이용해 한강을 건넜으며, 올림픽 공원에 도착해서도 '평화의 문'을 찾지 못해 약 20여분이 지연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림픽 공원을 찾긴 찾았는데, 평화의 문까지는 어떻게 가나?

이동차량 대열에는 제작진 차량을 비롯해 4대가 시속 60-70Km/h의 속도로 움직였으며, 임씨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프리랜서 최세영 작가는 직접 '자유의 신'과 함께 트럭에 올라타고 도착할 때까지 촬영을 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제작초기부터 임옥상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최세영 작가는 추운 새벽날씨에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자유의 신'은 올림픽 공원 보도블럭의 설계하중이 7톤이기 때문에 11톤 차량으로 진입이 불가능해 예정된 평화의 문 근처에 세워지지 못하고 대기중에 있으며, 오후 2시경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도로 안전지대에 된다.

제작에 참여했던 김영현(아트센터 '당신도 예술가')실장은 "자유의 신이 세워지면 황색천으로 온몸을 감쌀 예정"이라며 "이 황색천은 '지금은 폭격중'이라는 의미의 매향리 사격장 황색깃발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유의 신'은 20일 오후 2시 행사에 참가하는 매향리 주민들이 상복을 입고, 이 황색천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그 첫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행사를 마친 후, '자유의 신'은 매향리 주민대책위 사무실 앞에 영구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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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건일/동아닷컴 기자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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