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디지털]"휴머니티가 살아 숨쉬는 과학을"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48분


지난 천년 동안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17세기의 과학혁명이라고 대답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역사를 현재라는 컨텍스트에서 과거라는 텍스트를 문제삼는 일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지금을 살고 있는 그 누구도 17세기의 과학혁명이야말로 오늘의 과학문화를 이룬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과학혁명은 15세기의 르네상스와 16세기의 종교개혁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고 또한 뉴턴(Isaac Newton)이라는 한 천재에 힘입어 꽃 피울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르네상스의 성격을 그대로 표현하듯이 면죄부까지 공공연하게 판매되던 당시의 부패된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람’을 되찾자는 인간해방의 몸부림이 바로 르네상스요 종교개혁이었다고 본다면 과학혁명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뉴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라는 구절은 뉴턴 추모시의 첫 구절이다. 이 추모시의 작가인 포프(Alexander Pope)라는 시인은 이 구절을 당시 런던시의 골목에서 새끼줄 넘기를 하면서 놀던 어린아이들의 동요에서 인용했다는 사실에서 당시 뉴턴의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초승달이 만월이 되고 썰물이 밀물이 되는 우리 주변의 모든 변화가 하나님의 섭리로부터 뉴턴의 만유인력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이행됐을 때, 뉴턴은 당시 민중에게 기쁨의 노래를 선사했던 것이다.

소위 뉴턴의 고전역학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릴 때 어머니를 계부에게 빼앗기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자폐증에 시달리며 평생을 독신으로 일관했던 한 천재의 예리하고도 집요한 통찰력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는 놈’이라는 꾸지람과 함께 중학교에서 퇴학당하고 하릴없이 뒷동산에 올라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내가 만약에 빛의 속도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저 하늘을 날아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공상에 잠겼던 어린 소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자라서 상대성이론이라는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과학(科學)이란 낱말은 원래 일본 사람들이 약 100여 년 전에 영어의 ‘Science’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어의 ‘Science’라는 낱말은 앎이라는 뜻의 라틴어 ‘scientia’에서 비롯됐다. 즉, 지식이라는 뜻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돼 널리 읽히고 있는 불후의 명작 ‘인간 등정(登頂)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의 저자인 브로노프스키(Jacob Bronowski)는 다른 저서에서 “자아란 마음과 몸의 모든 경험을 지식으로 정착시키는 과정”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사람의 지식이란 경험에서 비롯되며 그 경험을 재정리한 것이 지식으로 정착하면서 ‘나’라는 한 인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같은 책에서 브로노프스키는 과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모든 생물은 같은 생물종 사이에 서로 교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의 경우는 그 외에 또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사고(思考)를 위한 언어, 즉 과학이라는 것이다. 이 정의만큼 과학의 핵심을 찌르는 설명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사람이 다른 생물종과 엄연히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생물종에서는 볼 수 없는 큰 두뇌에서 개념을 형성시키는 능력이며 이 능력이 바로 인간성(Humanity)을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자기의 전공분야인 미생물학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급의 업적을 남기는 한편 1972년도 유엔 인간환경회의를 주도한 듀보(Rene Dubos)는 그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인간이란 동물(So Human An Animal)’이란 저서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사물의 과학(The Science of Things)’을 발전시켜 왔지만 이제부터 ‘인간성의 과학(The Science of Humanity)’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이미 30여 년 전에 갈파했다.

격변하고 있는 오늘의 과학문화를 살고 있는 모든 지성인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김용준(고려대 명예교수·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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