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이래서 명작]로맹 롤랑 '장 크리스토프 '

  • 입력 2000년 10월 9일 18시 30분


형제들이여, 우리들 서로 가까이 다가앉자.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불행만을 생각하자. 이 세상에는 적도 악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만이 존재하고 있다. 반드시 죽어갈 운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 생의 무수한 작은 강이 흘러드는 미지의 바다에 나는 나의 작품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친다. -《장 크리스토프》에 부치는 글

◇자유 사상과 음악의 만남

프랑스 작가인 로맹 롤랑은 1866년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 클람시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에밀 롤랑은 부유한 공증인이었으며 자유 사상의 신봉자였다. 어머니 앙투와네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그에게 음악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었다. 롤랑이 태어난 당시 프랑스 사회는 나폴레옹 3세 정치의 마감, 1870년 보불 전쟁과 제3공화국 성립, 그 이듬해에는 파리의 노동자들이 정부에 대항해 거리에서 장렬한 싸움을 벌인 파리 코뮌이 일어나는 등 어수선한 사건들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은 《장 크리스토프》에도 잘 나타나 있다.

14세 때 파리로 이사온 롤랑은 생 루이 중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한편,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고 베토벤과 바그너의 음악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후 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의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로마로 유학가서 바그너의 제자였던 독일인인 말비다 부인에게서 음악의 뜻을 배웠다. 귀국 후 모교와 소르본에서 예술사와 음악사를 담당했으나 냉정한 성격 때문에 학생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초기에 그는 희곡을 많이 집필하였으나,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사회주의적 경향이 짙은 문학가인 페기를 알게 되고, 페기가 창간한〈반월수첩〉에 《베토벤의 생애》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904년으로부터 1912년에 이르기까지 8년에 걸쳐 대작 《장 크리스토프》가 〈반월수첩〉에 실렸다. 그 대하소설은 그간에 외국어로 옮겨져 폭발적인 인기를 거두고, 롤랑은 이미 저명한 신진작가가 되어 젊은이의 지도자라 불리고 있었다.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를 완성한 지 얼마 안되어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로부터 문학 대상을 받았으며, 1916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진정한 세계 평화를 위해

1914년 롤랑이 스위스를 여행하고 있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인류 모두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의 생각을 굳히게 만들었다.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원했던 롤랑은 전쟁이 끝난 뒤 인도의 시인 타고르와 교신하여 "이제 유럽은 자기 손으로 자기를 구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당신들 동양인들과도 손을 잡고 해나가지 않으면 진정한 세계 평화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라는 편지를 썼다.

유년시절부터 당시 프랑스의 비참한 실상을 보아온 롤랑은 당연히 전쟁에 관해서, 건전한 정치와 사회와 문학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을 적십자사와 사회사업에 기부하였다. 또한 파시즘이 대두되자 차츰 실천적 정치 활동에 참가하고 반파시즘 투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후 롤랑은 암스테르담의 반전세계회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 얼마 안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독일군 점령하에서의 괴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저항 운동 동지들에의 공감과 격려의 마음은 이 노문학가의 가슴속에서 꺼질 줄을 몰랐다. 1944년 8월 마침내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파리가 해방되었을 때, 다른 문학가들과 함께 롤랑도 파리에서의 축하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30일, 일흔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예술의 창작은 곧 영혼의 표현

로맹 롤랑은 20세기 유럽의 지성임과 동시에 양심이었다. 그는 항상 진리를 추구하였고, 진리와 사랑만이 인생과 사회의 건전한 생명력을 추구한다고 믿었다. 작가로서의 롤랑은 같은 시대의 프랑스 문학계에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자연주의와 예술지상주의 양쪽 모두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롤랑에게 있어 예술의 창작은 '영혼의 표현'이며, 영혼은 항상 생명을 떠나지 않으므로, 영혼의 표현은 곧 생명과 생활의 표현이었다. 로맹 롤랑의 생명주의는 자연주의적인 본능주의도 아니며, 물론 생명의 직관을 무시하는 관념적인 주지주의도 아니다. 그는 생명 있는 모든 것에 공감하고 때로는 크나큰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리하여 동시대의 문학 비평가들로부터 별의별 비평을 받았지만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롤랑의 예술 작품은 항상 진실한 비극성을 수반하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격려한다. '슬픔을 통해서 느끼는 기쁨'의 감명을 독자의 마음속 깊이 침투시키는데, 그 감명은 베토벤의 음악과 비슷하다. 《장 크리스토프》의 주인공 역시 베토벤적인 인물이다. 하나의 음악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소설에서 롤랑은 전쟁의 영웅이 아닌 사랑과 용기와 창조를 위해 싸우는 영웅의 모습을 훌륭히 그려냈다. 1922년부터 시작해 10년 뒤인 1933년에 완성한 《매혹된 영혼》도 《장 크리스토프》에 뒤지지 않는 명작이다. 이 소설은 안네트 리비에르라는 여주인공이 여성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며, 아들과 함께 복잡하고도 어려운 현대의 정치 문제, 사회 문제에 뛰어드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생애》, 《톨스토이의 생애》 등에 있어서도 진지하게, 위대한 영웅들의 생애를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했다. 무력이나 권력의 영웅이 아닌 이들 전기는 단순한 문학적인 의미 이상의 인간적 믿음의 힘과 아름다움을 나누어준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독일 라인 강가에 있는 소도시의 한 음악가 집안에서 장 크리스토프 크라프트가 태어난다. 주정뱅이가 된 부친은 크리스토프에게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피아노를 가르쳐 돈벌이를 시키려고 한다. 할아버지가 죽고 아버지는 실직하면서 크리스토프는 열한 살에 궁정관현악의 일원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가난에 의한 굴욕과 유명해져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성장한다. 장 크리스토프는 독일 음악의 감수성에 대한 반항과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는 성격 때문에 추방되어 프랑스 파리로 넘어온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역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크리스토프는 프랑스 문학과 정치에 환멸만을 느낄 뿐이다. 그러던 중 그는 올리비에라는 청년을 알게 된다. 사실 그는 프랑스 극단의 순회공연장에서 만났던 프랑스 아가씨의 동생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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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연(불어학박사 /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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