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근의 음악뒤집기]닥터코어911 '非正산조'

  • 입력 2000년 10월 2일 13시 20분


'사라지지 않는 신화' 서태지의 컴백으로 가장 주목받는 음악 용어는 '핌프 록'이다. 펑크 록의 자유 정신과 메탈의 육중한 사운드, 내뱉는 래핑, 그리고 펑키 리듬이 더해진 핌프 록은 서태지를 다시 대중 앞에 서게 했다.

서태지의 파워는 핌프록을 서태지가 국내 최초로 시도한 장르로 오해하게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콘'이나 '림프비즈킷'이 강렬하고 둔탁한 교배의 사운드로 록음악에 새로운 정형을 만들어낸 것처럼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었다.

'크래시'의 속사포 같은 사운드나 '노바소닉'의 프로그레시브한 메탈 사운드 위에 더한 래핑이 하드코어라는 장르를 대중들에게 익숙하게 하였다면, 지난해 '후지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섰던 '닥터코어 911'은 핌프 록의 가능성을 국내에서 타진하게 했다.

닥터 911의 이름이 조금은 생소할지 모르지만 서태지 컴백무대에서 긴 머리의 베이시스트와 기타리스트와 이정현의 2집 수록곡 '잘 먹고 잘 살아라'의 작곡자를 기억한다면 닥터코어 911이란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클럽 하드코어 (아싸오방 2집)' 컴필레이션, 싱글 앨범 '닥터코어 911', 그리고 이번에 발표된 '비정(非正)산조'까지 닥터코어 911의 음악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단어는 '불균형'이다. 앨범 타이틀에서 표현되는 '바르지 않은 산조'가 보여주듯이 말이다. 잦은 엇박자의 사용과 즉흥적인 곡 구성, 그리고 국악, 하드코어, 테크노, 힙합 등 한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은 불완전하지만 극적인 반전을 기대케 한다.

기존의 록음악과 달리 기타의 에드립보다 박자와 리프의 그루브(미국의 속어로 '동조하는, 파장이 맞는'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흥겹고 멋지게 흐름을 타면서 연주한다는 뜻)감, 표현범위가 넓은 드럼은 트윈 보컬 시스템과 맞물려 공격적이고 짜임새 있는 랩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오프닝 트랙 'Hostile'로부터 11번째 트랙 'Bad Girl'까지 이어지는 직설적인 표현과 대담한 연주는 밴드가 공연에서 보여주었던 과감하고 화려한 무대액션과 카리스마를 옮겨 놓은 듯하다.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비가'는 직선적이고 무거운 소리로만 인식되어온 하드코어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어 놓을만한 발라드곡이다.

이외에도 밴드의 언더그라운드 히트곡인 'Shasha Funky Shake' 가 깔끔한 일렉트릭 사운드로 재 편곡 수록되었고, 'Taxi', '나무위 저까치' 등의 곡에서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만한 비속어 입담과 대담함을 느낄 수 있다. 걸출하지만 저속하지 않고 직선적이지만 지루하지 않은 재치 있는 산조 가 바로 닥터코어 911이 이번 앨범 수록곡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비정(非正)산조'다.

류형근 <객원기자> atari@donga.com

김윤미 30자평: '인디 계의 H.O.T'라는 '닥터코어 911'의 정체를 알려주는 앨범, 서태지 솔로 2집과 함께 들으면 더욱 흥미로울 듯. 예컨대 서태지 vs 답십리 안의 기타연주와 톤을 비교하면서. 별점 (5개 만점)★★★★ (음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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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st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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