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교수 웃음의 인생학②]‘웃자고 한얘기’에 담긴 지혜

  • 입력 2002년 9월 25일 18시 41분


웃음이라고 다 같은 웃음은 아니다. 눈물에 가짓수가 많듯이 웃음의 종자도 조롱조롱이다. 사회의 다양성 지수, 공동체의 풍요 지수가 웃음에 따라서 달라진다.

어느 여름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거리를 걷다가 눈이 둥그레졌다. 난데없이, 한 아주머니가 멜론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웬 떡이냐 하고 고르바초프가 그 앞에 웅크렸다.

“이것 파는 거요?”

“그럼 안 파는 물건 내 놓는 장사도 있나?” 대답이 퉁명스러웠다.

사마르칸드에서나 왔을 법한 멜론의 맛이라니!

군침이 도는 고르바초프는 개의치 않았다. 운송 사정이 나빠서 여간해서는 못 얻어먹는 귀물을 그가 뒤져보았다. 밑이 좀 상해 있었다.

“왜 상한 것 하나 만이요. 내가 고를 여지가 없지 않소!”

노점상 아주머니가 물었다.

“당신 대통령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대통령에게 여자의 침 섞인 말이 날아들었다.

“우리가 당신 뽑을 때나 마찬가진데 뭘!”

옆 사람은 배꼽을 쥘 것이지만 고르바초프에겐 송곳날이다. 이게 바로 ‘풍자 웃음’의 진면목인데 그게 공산당 기관지의 일종인, 만화 잡지 ‘악어’에 실렸다니 놀랍다. 가만 우리에겐 ‘지렁이’쯤 될 풍자 만화잡지가 있던가?

그런가 하면 이런 웃음은 어떨까?

“새파랗게 젊은 당신이 왜 늙다리, 존슨을 러닝메이트로 골랐소?”

대통령 취임식 파티 석상에서 한 기자가 케네디에게 던진 삐딱한 질문이다.

“아! 그것. 내가 어리니까 나이 많은 보호자가 없으면 기차도 못 탈 것 아니오.”

따끔한 고비를 슬쩍 농으로 넘어가는 이 재주를 기지(機智)라고 한다. 갈등이 빚어질 법도 한 고비를 도닥거려서 넘어가는 웃음, 퍽 따스하다.

대통령을 공인된 잡지가 통렬하게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자신에게 직접 쏟아진 비아냥거림을 웃음으로 도닥거릴 국량(局量)을 지닌 대통령일수록 지도력이 커진다.

어느 것이나 우리 이야기가 아니어서 안타깝다. 고르바초프를 겨냥한 그런 웃음의 자유 없는 언론의 자유는 맹물 탄 맥주다. 케네디처럼 익살을 떨 줄 모르는 대통령은 소인배(小人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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