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육상]이봉주 "마지막이라 생각 온힘 다쏟았는데…"

  • 입력 2000년 10월 1일 19시 00분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 들어서 400m 트랙을 한 바퀴 도는 일이 지루하고도 고통스럽기만 했다.

경기장을 도는 동안 그의 얼굴은 절망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며 일그러져 있었다. 오른쪽 무릎에 난 상처와 손등에서 보이는 피는 보는 이를 더욱 애처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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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선을 통과하자 전광판엔 2시간17분57초가 찍혔다. 자신의 최고기록(2시간7분20초)에 무려 10분37초나 뒤지는 기록.

천근만근처럼 느껴지는 무거운 발걸음을 간신히 옮겨 경기장 안 라커로 향하는 이봉주(30·삼성)는 허탈감에 사로잡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는 라커쪽 벤치에 앉자마자 한참 동안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괴로워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올림픽에서 끝내 금메달의 꿈을 풀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96년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이후 4년간 준비해 왔던 고된 훈련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머리를 스쳐갔다. ‘어떻게 준비해 온 올림픽인데….’

‘올림픽 마라톤 월계관의 주인공은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처럼 이날 레이스에서 신은 이봉주를 도와주지 않았다. 선두그룹에서 순조로운 페이스를 보이던 이봉주는 10㎞를 지나 11㎞정도 지점에서 앞서 뛰던 선수의 발에 걸린 게 결정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다시 일어나 힘차게 뛰어 보려고 했지만 이미 선두그룹은 먼발치에 있었다.

“10㎞지점까진 모든 게 정상적이었다. 어떤 선수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스팔트에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손과 무릎이 까졌다. 한번 넘어지고 나니까 선두권과 차이가 많이 벌어져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납기로 유명한 시드니의 바람까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시간당 26∼33㎞의 만만치 않은 바람이 앞에서 불어와 페이스를 끌어올리기가 힘들었다.

이봉주는 “운이 없었다. 그동안 금메달을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했는데…”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시드니〓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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