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영식/또 양보…

  • 입력 2000년 9월 24일 18시 43분


“회담을 하루 연장했는데도 몇가지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떠나기로 했다. 이번 회담은 우리 기대에는 못미쳤다.”

적십자회담 수석대표인 한적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은 23일 오후 5시 가까이 돼서 금강산호텔 기자실을 찾아 이같이 발표했다. 남측 대표단은 부랴부랴 짐을 꾸리기 시작했고 공동취재단도 철수를 서둘렀다.

북측 대표단과 송별인사까지 나눈 남측 대표단이 다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오후 7시경. 서울에서 긴급훈령이 왔고 이를 받아든 남측 대표단은 북측 요구가 대폭 수용된 합의서에 서명했다.

박수석대표는 다시 기자실을 찾았고 “이번 합의가 미흡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미룰 것은 미뤘다”며 회담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회담 성과는 정부가 임동원(林東源)국가정보원장과 김용순(金容淳)북한노동당비서의 특사회담 성과로 홍보했던 ‘연내 이산가족 생사확인 완료’ 방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1월 중에 남북이 각각 300명의 ‘서신교환’을 시범적으로 실시한다는 것 정도가 새로운 내용일 뿐이고 대부분의 협의과제를 12월 3차회담 이후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측이 ‘양보하고 미루며’ 합의서를 타결시킨 배경에는 ‘잘 나가고 있는’ 남북대화 분위기를 깨서는 안된다는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의 회담 목표는 잊어버리고 북한 기분 맞추기에만 급급한 식의 회담진행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남측 대표단이 회담 결렬을 선언하고 금강산관광선 ‘금강호’를 타겠다고 북측을 압박했던 시간에 ‘금강호’는 이미 출항허락을 받고 장전항을 떠나 남쪽으로 항해 중이었다는 사실도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남측 대표단은 그냥 한번 떠나겠다고 해 본 것일까.

김영식<정치부>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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