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보의 옛날 신문 읽기]여장 접대부

  • 입력 2000년 8월 27일 17시 29분


동아일보 1966년 5월 28일자 기사입니다.

《절보고 남자라구요, 천만의 말씀. 전 어려서부터 여자로 자랐고 지금도 그냥 여자로 살고싶어요-23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끌려왔다 훈방된 여장 접대부는 ‘매니큐어'로 붉게 물든 손톱을 매만지며 이렇게 간드러지게 말했다.

7년간의 ‘쇼걸' 생활에 7년동안 접대부 생활까지 해온 남자 아닌 남자 이재호군(28=마포구 신수동 70). 그는 ‘불행한 여자'라 자처했으나 실은 ‘성별없는 외로운 인간'이었다.

14년간 감추어둔 이군의 본색이 드러난 것은 지난 22일밤. 주점 ‘신수옥'에 술마시로 온 안모(24)군이 애교있게 술따르는 이군의 몸을 저고리 품속으로 만지려다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중략)

이군은 수원에서 체육인 김모(43)씨와 1년 동안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군은 김씨를 본처에게 돌려보내고 수원을 떠나 상경 2년전부터 이대 입구 요정 ‘향원' 등 신촌일대에서 접대부생활을 해오다 22일밤 본색이 드러난 것이다.

(중략)

“사람들은 저같은 사람들의 처지를 통 이해해주지 않더군요.”-이군은 이들의 고민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군이 지금까지 자살하려 했던 것은 두번,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의 성적 불완전성 때문이었다.

작년 가을 이군은 완전한 여자가 되고파 성전환 수술을 서둘렀으나 보증금 6만원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이군 말에 의하면 이군처럼 불행한 ‘여장남자'가 꽤 많다는 것이다. 이군이 22살때 가입돼 있던 평화극단(박모씨가 단장)에는 ‘일선' ‘논희' ‘카희' ‘백화' 등의 예명을 가진 4명의 여장 남자가 ‘쇼걸'로 활약했다는 것이다.

이군은 요즘 신경쇠약으로 초췌해졌다. 남보다 신경을 몇갑절 더 쓰니까 잘살아야 40까지 일거라고 했다.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불행 때문에 이군은 고민하는 것이다.》

기사에는 주인공의 전신 사진이 적나라하게 실려 있습니다. 이재호란 실명도, 마포구 신수동 70번지라는 그(혹은 그녀)의 주소도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요즘같으면 상상도 못할 인권침해입니다. 저는 `간드러지게' `애교있게' `본색' `정체' 같은 표현도 눈에 거슬립니다.

기사에 대한 여러분의 독후감을 묻고싶군요. 징그럽나요? 측은한가요? 아니면 짬뽕?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 `엑스멘'(X-men)이란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원래는 공룡 애니메이션 `다이너소어'를 보여주기로 약속했던 것인데, 게으름을 피우다 공룡 간판이 걸린데가 없어 그렇게 됐습니다.

`엑스멘'은 미래사회의 돌연변이들에 관한 SF 영화입니다. 돌연변이들은 미래사회에서 힘없는 소수지요.

첫장면은 1944년, 폴란드의 유태인 수용소. 독일군에게 잡혀온 유태인들이 떼를 지어 어디론가 가고있습니다. 와중에 한 소년이 부모와 헤어집니다. 울부짖던 소년에게서 서서히 어떤 초능력이 발산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소년과 부모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던 철조망문이 내려앉고....

소년은 후일 돌연변이이며 초능력자들인 엑스멘들을 모아 자신들을 위협하는 다수에게 대항하는 세력으로 키웁니다.(그가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소수 출신인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더군요.)

아들은 영화를 재미있게 본 모양인제 저는 좀 지루했습니다. 만화가 원작이라는데 영화 역시 만화같았고, 특수효과라는 것도 이제 웬만해서는 간에 기별도 안가는 탓이지요.

어쨌거나 저는 영화를 보다가 그 바로 며칠 전 읽은 위의 동아일보 기사가 오버랩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힘없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편견과 폭력, 뭐 그런 것들의 겹침이었겠지요.

그리하여 저는 어느 순간부터 영화를 `닫힌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자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겁니다. 소수에 대해 적대적인 세력의 대표인 켈리 의원과 우호적인 그레이 박사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돌연변이는 위험합니까?” “돌연변이는 누구에게든 생길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아이들에게까지.”

이제 `대중의 대표'인 기자들이 그레이 박사에게 개떼처럼 달려들어 묻습니다.

“켈리 의원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돌연변이 커뮤니티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돌연변이는 위험하다는데 사실입니까?” 등등.

아, 그러고보니 제가 아들과 함께 애초 보려고 했던 `다이너소어'는 디즈니사의 작품이군요. 월트 디즈니는 또 누굽니까. 동화의 왕국을 건설했던 그는 뜻밖에도 소수를 억압했던 인물이었지요. 인종주의자, 극우주의자, 파시스트, 노조 파괴자였습니다. 게다가 히틀러까지 존경했다는 풍문이 전해져 옵니다.

이래저래 `엑스멘'을 보았건 `다이너소어'를 보았건 `힘없는 소수와 무자비한 다수'에 대한 상념은 여일했을 것 같습니다.

요컨대 제가 말하고싶은 것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과 폭력은 언제나 비인간적이라는 겁니다. 이재호군과 동성애자도, 엑스멘과 돌연변이도, 소년과 유태인도 사회의 일원이고 인류의 구성원이지요. 소수라고 해서, 그들이 나와 약간 다르다고 해서 왕따시키는 것은 어느 경우든 죄악 아닙니까.

늘보<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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