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of the week]Open The Doors

  • 입력 2000년 8월 25일 21시 32분


▶ 60년대 문화의 상징

우리 젊은 록 매니아들의 음악적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통기타와 생맥주, 청바지의 시대가 아니다. 그 시대의 모던 포크는 386세대들의 전유물이 아닐까. 지금의 젊은 대중음악 청취자들이 70년대의 유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는 80년대라는 폐쇄적인 시기가 방해한다.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록 매니아들은 묘하게도 60년대로부터 더욱 진한 향수를 느끼는지 모른다. 그것도 이 땅이 아닌 미국이라는 이국의 땅으로부터. 마약과 꽃, 그리고 우드스탁의 시대, 미국의 6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록 스피릿이 폭발했던, 정신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6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과 쿠바 침공, 캐네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샌 프란시스코에서의 플라워 무브먼트 등, 미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봉건적인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가 충돌하던 이 시대에 도어즈(The Doors)는 그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받아들인 밴드 중 하나였다. 당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비틀즈(The Beatles)가 깔끔한 이미지를 선사하고 밥 딜런(Bob Dylan)이 이성에 호소했다면 도어즈는 잠재된 욕구와 충동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그들은 미국 록 역사상 사회의 압력과 기성 세대의 허위를 거부한, 그리고 그에 반항한 최초의 밴드였다.

도어즈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처럼 적극적으로 정치적 노선을 내세운 밴드는 아니다. 도어즈의 보컬리스트 짐 모리슨의 말을 빌자면 그들은 '에로틱한 정치가들'이다. 그들의 음악은 기성 세대의 모순과 허위를 향한 반항적인 메시지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은 선동적인 것이 아니라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의 형태였다. 이는 음유시인 짐 모리슨의 시적인 가사에서 비롯된다.

광기와 음울함, 허무와 퇴폐로 가득찬 그의 노래는 당대 젊은 세대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었으며, 이는 곧 도어즈 음악의 실체이기도 했다. 레이 만자렉(Ray Manzarek, 키보디스트)과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에거(Robbie Krieger, 기타리스트)은 도어즈를 결성하게 된 계기가 바로 짐 모리슨을 시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다.

도어즈는 곧 시와 록큰롤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반항의 광기와 문학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짐 모리슨은 그의 시에 마약과 술, 섹스를, 그리고 주술과 환상, 퇴폐와 죽음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특히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The End'를 통해 그는 양친 살해에 대해 노래함으로써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광기의 표현은 마릴린 맨슨이나 에미넴이 무절제하게 F**k를 외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그들의 음악은 마치 엄숙하고 진지한 장례식을 치루는 반항아들의 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어둠과 광기에 휩싸인 이러한 면모는 분명 도어즈의 것이긴 하지만 도어즈의 전부는 아니다. 특히 이러한 오해는 올리버 스톤의 영화 [도어즈]를 통해 더욱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돼 있는데 이에 대해 레이 만자렉은 "그 영화는 짐을 구제불능의 알콜 중독자에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그의 밝은 면, 유머에 관한 묘사는 전혀 없다. 그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조금 달리 생각하면 짐 모리슨의 가사에서 어둠과 동시에 유머가 공존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슴에 불을 밝혀라(Light My Fire)'라고 말하면서 화장(火裝)용 장작더미(Funeral Pyre)를 들이민다. 그의 시에는 블랙 유머가 살아있다. "지금 우리는 감각적인 것을 우선시하고 악에 매력을 느끼지만 이것은 뱀의 허물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이것을 벗어던질 것이다." 짐 모리슨이 말한 것처럼 도어즈도 궁극에는 밝음을 원했고, 짐 모리슨의 광기어린 행위들은 전통적인 도덕과는 정면에 배치된 것이었지만 오히려 허물을 벗은 순수함이 느껴진다.

도어즈의 음악은 짐 모리슨의 음울한 가사와 더불어 독특한 라인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베이스 연주자가 공석이었다는 것은 당시로서 파격적인 것이었으며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대중에게 낯선 것은 곧 성공을 담보하기 힘든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처음 도어즈가 레코드사를 찾았을 때 그들은 여러 번 거절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도어즈의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베이스가 없는 대신 그 공백을 레이 만자렉의 키보드가 충분히 채워주었으며, 오히려 그의 화려한 키보드 연주는 짐 모리슨의 가사와 더불어 도어즈 음악의 하나의 상징이 됐다(그렇기에 베이스 연주자의 세션을 빌었던 도어즈의 후기작들보다 초기 작품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지금도 거의 예외는 아니지만- 의 대중 매체들은 도어즈가 아닌 짐 모리슨을 영웅으로 스타로 만들기 바빴다. 잘 생기고 늘씬한 외모에다 천재적인 음유 시인, 그리고 공연에서는 관능의 화신으로서 퇴폐미의 절정을 보여줬던 그를 언론이 놓칠 리가 없었다. 이는 도어즈의 생명력을 단축시킨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 도어스는 60년대 히피문화가 그랬듯 하나의 공동체를 꿈꾸었다.

음악적 역할 역시 처음에는 짐 모리슨이 가사를 쓰고, 노래는 그와 함께 레이 만자렉이 함께 불렀으며, 멤버 전원이 곡을 쓸 정도로 모두의 역할이 강조됐다. 그러나 대중매체는 짐 모리슨을 영웅시했고, 그들 자신이 꿈꾸었던 공동체로서의 도어즈는 균형을 잃어가게 됐다. 실제 후기작 [Morrison Hotel]이나 [The Soft Parade]의 대부분의 곡은 초기와는 달리 짐 모리슨에 의해 작곡된 곡이다. 결국 변혁을 꿈꾸었던 그들 역시 언론과 대중, 그리고 돈에 의한 왜곡을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었고, 그들은 이로부터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짐 모리슨의 상징화는 커트 코베인이 사망한 후 너바나가 더 이상 의미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71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도어즈를 더 이상 생명력이 없는 밴드로 만들어버린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짐 모리슨 사후 남은 멤버들은 몇 장의 앨범을 발매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고, 결국 73년 해체되고 말았다.

이제 도어즈는 하나의 신화가 돼 버린 듯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우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신화를 추억하고 있다는 것은 도어즈가 더 이상 새로운 앨범을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동시에 지닌다. 이러한 대중들의 심리를 잘 간파하고 있는 레코드사는 이미 해체되거나 고인인 된 음악인들의 미공개작을 파헤쳐 세상에 내놓고 있다. 2000년 우리를 찾아온 도어즈의 새 앨범 [Essential Rarities]는 타이틀 그대로 '정수로 가득한 희귀작'들로 채워진 앨범이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이 괜찮았던 도어즈 매니아였다면 이미 99년 발매된 박스세트 [Complete Studio Recordings]이나 부틀렉을 통해 이 앨범의 수록곡들을 만났을 것이다. 전곡의 가사가 수록된 60페이지에 이르는 박스 세트의 북클릿과 달리 이 앨범에는 라이너 노트도 없이 단 4장의 사진이 들어있을 뿐이지만 그동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도어즈 매니아들에게 이 앨범은 가장 큰 선물이다. [Essential Rarities]의 수록곡은 짐 모리슨이 살아있던 당시에는 쓸모 없던 것들이었다.

또한 도어즈의 잘 알려진 곡들, 'Light My Fire', 'Rider's On Storm' 등이 아닌 대부분 낯선 트랙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지금의 일반 대중들을 매료시키기 힘들다. 그러나 도어즈가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지금까지도 확고부동한 팬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가장 중요한' 쓸모없는 것들의 모음집이다.

이 앨범에서는 짐 모리슨이 생전에 피아노를 치며 부른 노래 위에 남은 멤버들이 오버더빙해 완성한 'Orange County Suite'를 비롯해 69년 [Morrison Hotel]를 작업하던 중 일렉트라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Wonan Is A Devil', 'Hello, I Love You'의 데모 버전 등을 만날 수 있다.

60년대 사이키델릭 록과 히피 문화를 대변했던 도어즈는 '변화하는 것만이 영원하다'라는 말이 또 다른 진리임을 말해준다. 변혁의 시대에 도어즈는 그 흐름을 몸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들의 음악은 곧 변혁의 물결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전혀 알지 못하는 것 사이에 문이 있다. 우리가 바로 그 문이었다." 레이 만자렉은 이렇게 도어즈를 말한다.

조은미 jamogue@tubemusic.com

기사제공 : 튜브뮤직 www.tube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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